엄마가 죽었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린 두 편 소설의 중심 내용은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된다. 이 시대의 엄마는 어떤 존재인지 묻게 된다. 김도연의 <왜 옆집 부부는 늘 건강하고 행복할까요>와 김이설의 <부고>는 ‘아내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김도연의 <왜 옆집 부부는 늘 건강하고 행복할까요>는 반어법적 목소리를 낸다. 아내가 죽어간 빈 아파트에 앉아 있는 나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콩쾅콩쾅 거실을 뛰어다니는 옆집 아이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뒤이어 귀로 전달되는 싸움 뒤에 사랑을 나누는 옆집 부부의 달콤한 소리를 듣는다.

아내는 아파트의 화장실에서 목을 매 죽었다. 아내는 강릉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었고 나는 대관령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아내는 계속 나에게 돈을 투자해 줄 것을 요구한다. 몇 십 년만의 수해로 정성스럽게 심은 모든 농작물이 휩쓸려 가던 날에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그 날에도 아내는 전화를 걸어 “내가 이렇게 살아야 겠어? 나 잘 할 수 있어. 이번에는.”라며 미용실 확장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마침내 나는 아내에게 투자를 하고 초라한 밭떼기만 남는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건네는 나의 돈을 받으면서 “고마워. 이번에는 진짜 잘해 볼게. 이 동네 미용실을 내가 다 정리해 버리겠어.”라며 달뜬 목소리를 보내지만 조만간 나에게 다시 돈을 달라고 요구할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내는 예뻤다. 면소재지 미용실에서 처음 미용기술을 배워 나의 머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때 무엇보다 행복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러던 아내였는데 조그마한 동네에 미용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 진다. 아내의 미용실은 급속도로 뒤처지게 된다.

아내의 우울증이 심각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화장실에 들어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날이면 딸에게서 다급하면서도 울음이 섞인 전화를 받는다.

“아빠! 엄마가 이상해.”

“아빠, 엄마가 이상해.”

그때마다 나는 딸에게 엄마 친구에게 전화하라고 할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매번 고정적으로 있는 연례행사처럼 아내의 화장실 행은 벌어졌다. 다급하게 들려오는 딸아이의 전화 목소리는 그저 평범한 한 일상으로 나는 취급해 버린다.

그날도 다급한 딸아이의 전화에 “엄마 친구에게 전화해.”라는 말을 했고 딸아이는 “아빠, 정말 엄마 남편 맞아?”라는 힐난을 받는다. 그날은 너무나 오랫동안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결과는 ‘아내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만다.

아내가, 엄마가 떠나버린 빈 집 아파트에서 우두커니 앉아 춤추는 토끼 인형을 쳐다보는 중간에도 옆집에서는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달뜬 고음의 소리가 그대로 전달된다.

나는 “왜 옆집 부부는 늘 건강하고 행복할까요”라고 생각한다. 싸움을 하고 옆집 아이가 쿵쾅쿵쾅 뛰어 다니는 소리, 그리고 늘 그 뒤에 들려오는 그들 부부의 사랑을 나누는 소리...나는 아내와 진정으로 사랑을 나눴던 기억이라도 있는가. 춤추는 토끼 인형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즐거운 듯 기계 동작에 맞춰 춤만 춘다.

“엄마가 죽었다.”

김이설의 <부고>는 엄마가 엄마의 죽음을 알려주는 곳에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나를 낳아준 엄마의 죽음을 나를 키워준 엄마가 담담하게 부고를 전달해 주는 시작점이다.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나를 떠난 지 삼십 여년이 지나 당뇨병 합병증으로 다리를 잃고 시력을 잃은 뒤 찾아온 생모! 과연 나는 그녀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한 미국인 입양아와 동거하고 있다. 그도 엄마가 두 명이다. 낳아준 엄마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그녀는 다른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다. 그를 만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기 위해 한국에 머물기를 작정한다. 그렇게 엄마가 두 명인 나와 그는 동거를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나의 생모는 아버지의 외도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나는 오빠가 한명 있다. 오빠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다. 지긋지긋한 한국이 오빠에게는 도망갈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여고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나의 아버지를 알고 있는 한 학생에게 강제로 폐가로 끌려간다. 몇 명의 남학생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 남학생 중에는 아버지가 몰래 낳은 자식이 있었다. 아버지의 자식에게서 능욕을 당한 나는 그러나 아버지에 의해 신고도 하지 못하고 “누구나 불행은 있는 법이다. 잊고 살아라.”는 아버지의 말만 들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죽고 난 뒤 발인을 하지만 여전히 생모는 나에게 그 어떤 의미도 없다. 나에게 세 달치 분량의 돈을 남겨줬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생각이 없다. 나의 새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생모의 죽음이후 아버지는 새 엄마와 헤어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나에게 말한다.

왜?

아버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원래 그 사람도 가정이 있었다. 내가 양육비를 주는 조건으로 그 사람이 나와 같이 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분노한다. 새 엄마의 세심한 배려와 새 엄마의 지나친 친절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존대를 쓰면서, 아버지 앞에서는 더없이 활짝 웃었던 것도 ‘자기 자식’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었다. 모두 자기자식을 키우기 위해 내놓은 거짓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격분한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자기 마음대로 산, 그리고 내 인생 한 복판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던 사람, 나의 불운을 만든 건 바로 아버지였다고 나는 격분한다.

마침내 내 입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는 질문까지 터져 나온다.

“그럼 빌어먹을 그 새끼는요? 나한테 그 짓을 한, 아버지가 싸질러놓은 그 새끼는요!”

“작년에......사고로......죽었다.”

“하, 잘됐네요. 그럼, 이제 아무 문제없네요!”

“평생 자식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도 자식 셋 모두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은 건 이제 너 하나다. 그 사람 처리까지 내가 다 끝냈으니, 남길 빚은 없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는 싸늘한 시체로, 죽은 지 닷새 만에 새 엄마에 의해 발견된다. 새 엄마는 울면서 내가 자주 찾아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나에게 말하지만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엄마와 아버지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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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