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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6 '태양을 먹은 새'와 세종의 초상…'운보의 집'을 찾아서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세종시에서 주중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 세종청사 부처 출입기자로 있으면서 나에게는 몇 가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 주중은 세종시에서, 주말은 여주에 있는 집에서. 이른바 주말 가족이 된 셈이다.

 

또 한 가지. 매주 금요일 집으로 올라갈 때마다 주변의 볼거리를 찾아 잠시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번 주에는 세종시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여주로 올라가는 길에 '운보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스쳐 지났을, 혹은 한 번은 가 본적 있는 듯한 '기시감(旣視感 이미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이 느껴지는 공간들이 있다. 

 

3일 오후 세종시 첫마을에서 출발해 충북 청원군 내수읍으로 방향을 잡았다. 세종시에서 오송역을 거쳐 지나는 길이었다. 세종청사를 지나 오송역으로 가는 넓은 도로는 아직 차들이 많지 않다. 언젠가는 교통체증으로 시달릴지 모르겠는데 아직은 여유가 있다. 여유 정도가 아니라 나 혼자 뻥 뚫린 도로를 달리고 있다. 거칠 게 없다.  그렇게 신나게 50분의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운보(雲甫)의 집'이었다.   

 

 

 

 

 

 

 

 

 

 

 

조용한 한옥…운보의 집

 

이곳 내수읍에 운보 김기창 화백이 자리 잡은 때는 1984년이었다. 1976년 부인 박래현 화백과 사별한 이후였다. 청원군 내수읍 '운보의 집'이 위치한 곳은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선생까지 지낸 '신여성', 김기창 화백의 어머니 고향이다. 운보는 이후 삶이 끝날 때까지 이곳 한옥에서 작업을 하면서 정원을 가꾸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운보의 집에 도착하자 입구에 매표소가 있었다. 매표소 옆 주차장에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여서 관람객들이 많지 않은 것인지. 성인 한 명당 4000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매표소를 지나면 운보가 살았던 집이 먼저 나타난다. 전통 한옥으로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넒은 정원을 갖췄다. 동양의 미를 볼 수 있는 집이었다. 특히 곳곳에 적게는 100년, 많게는 400년을 넘은 분재가 가득해 눈길을 끌었다. 큰 모과나무에서는 분홍빛 꽃망울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중 곰솔(해송)의 자태가 아름다워 보였다. 적당히 휘어지고, 봄을 맞아 싱그러운 잎들이 막 자라나고 있었다. 지나가던 낯선 관람객 두 명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 관람객이 "분재를 보면 나는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저 봐, 화분 속에 뿌리가 자라지 못하도록 철사로 꽁꽁 묶어 놓고, 키도 자리지 못하고…"라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자태는 아름다워 보였는데, 역시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운보는 친일파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화부 추천작가는 물론 전쟁이 한창이던 때 각종 친일매체에 삽화를 그려 친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삽화에는 전쟁에 참가하는 병사들의 충성이 그려졌고, 조선 청년 징병제를 적극 알리는 삽화도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해방이후 미술계 중심으로 잠시 배제됐지만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뒤집어 져 화단의 중심에 섰고 그 중심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운보는 8세 때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었다. '운보의 집'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운보 미술관'이 나타난다. 이곳에 운보 자신이 직접 적은 글이 있다. 운보는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왔다. 늙어갈수록 조용한 속에서 내 예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에게 '귀가 들리지 않은 것'은 그의 말대로 불행만은 아니었지 싶다. 새삼 참담하고 암울했던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운보의 '잃어버린 청각'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태양을 먹은 새'와 세종대왕의 초상

 

운보의 그림세계는 '운보 미술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수십 개의 그림이 순서대로 미술관에 전시돼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엽서 10개크기(10호)의 작은 그림에서부터 500호가 넘는 대작까지 다양했다.


그중 운보의 대표적 작품은 '태양을 먹은 새'이다. 강렬한 느낌의 이 그림은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집중된 점을 새로 표현했다.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고 새의 날개 짓이 비상하려는 순간을 잡았다. 단순한 색채로 이처럼 강렬한 인상의 이미지를 던져주는 일은 드물 것이다.

 

'군마도'는 여섯 마리의 말이 울부짖으며 힘차게 세상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비단에 수묵채색으로 이뤄진 '군마도'는 탄탄한 말들의 근육과 지금이라도 화폭을 박차고 나올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부엉이'와 '초저녁'이란 두 작품에는 금슬 좋은,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어울리는 한 쌍의 부엉이가 가만히 앉아 있다. 나무 위에서, 소나무 사이로 넘나드는 부엉이 한 쌍의 모습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게 하는 여유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 시대의 대작은 '1만원권 세종대왕'이다. 운보는 1975년 한국은행의 요청으로 1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세종대왕 초상을 그리게 된다. 그 그림이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는 1만원권 지폐에 들어있다. 운보의 그림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셈이다.  

 

운보는 갔지만 여전히 그의 그림 세계는 현실에 남아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잘된 것과 잘못된 것,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기 때문일 것이다. '운보의 집'은 우리의 유산 중 하나이다. 그의 삶은 포장될 필요도 없고, 보태질 이유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운보 미술관' 한 귀퉁이에 있는 방명록에다 이렇게 적었다. "나무가 예술입니다." "힐링하고 갑니다." "아릅답습니다."라고. 관람하는 이들의 느낌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 다름조차 이 곳 '운보의 집'에는 누구하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느낌의 자유'가 허락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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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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