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반데룽’의 쳇바퀴 삶, 길을 찾아서⋯이승하의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똑같은 길이지만 어제 걸었던 길과 오늘 걷는 길은 다르다. 똑같은 음악이지만 마음이 우울할 때와 마음이 즐거울 때 듣는 음악은 다르게 다가온다. 길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들길, 산길, 골목길, 꼬부랑 길, 곧게 뻗은 길, 가는 길, 되돌아오는 길⋯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벗어나는 순간, 헤아릴 수 없는 이 수많은 길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비오는 아침,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비라고 불안해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도 막힌다. 조금 늦게 회사에 도착한다. 회사 맞은 편, 2층에는 조그마한 카페가 있다. 수제 햄버거를 파는 가게인데,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음악이 솔솔 새 나온다.

가랑비가 오는 아침, ‘Ghost(사랑과 영혼)’의 주제가였던 ‘Unchanged Melody'가 흘러나온다. 길거리에서 비오는 날 아침, 언뜻 들려오는 노래가 고즈넉하다. 회사 입구로 올라서지 않고 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 무작정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자본의 무게가 눌린 나는 무작정 길을 떠나지 못하고 회사 입구로 쏘옥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길 위에서 혜초를 만나다

이승하 시인의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은 ‘혜초의 길’을 시로 담았다. <왕오천축국전>이란 대작을 남긴 혜초가 비단길을 거쳐 인도까지 이르는 여정을 시인이 직접 발길을 옮기면서 시로 표현했다. 이 시집의 부제는 <혜초의 길>이다.

세상은 바다

돛 올리면 집 밖은 전부 길

닻 내리면 바로 거기가 내 집인 것을(<고원에 바람 불다>중에서)

시집의 첫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모두 바다이고 돛을 올리면 떠나야 하고 우리는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 모든 길속으로 인간들은 걸어가고, 걸어가다 지치면 닻을 내린다. 그곳에 안락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내 집’이라고 시인은 읊고 있다.
 

시인은 혜초가 걸었던 길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혜초의 내면을 읽는다. 길 위에서 먹고, 길 위에서 자고, 길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혜초의 모습을 그려낸다.

많이 걷게 될 것이다 후세 사람들아

걷다 보면 성년 되고

걷다 보면 노년 되고

네가 걸음 멈추면

밤하늘의 별들도 운행 멈출 것이다

우리 어차피 길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마음의 집 한 채 여기서 또다시 허물로(<길의 아들>중에서)

모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내가’ 보는 별과, ‘네가’ 보는 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수 억 만개의 DNA가 모두 같지 않은데 어떻게 같은 마음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네가 걸음 멈추면 밤하늘의 별들도 운행을 멈추게’ 된다. ‘네가 눈을 감으면 이 세상의 집 한 채 허물어지고’ 또다시 다른 인간이 태어나고, 세상은 그렇게 걷다 걷다 변하게 된다.

혜초는 혼자서 인도로 가지 않았다. 80여명의 일행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높은 고개와 넉넉지 않은 먹거리, 초라한 행색으로 길을 떠난 많은 이들이 중간 중간 질병에 죽고, 고통스러워 삶을 마감한다. 시인은 <고행>이란 시편에서 “오늘도 한 구의 시체를 묻었다”고 혜초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링반데룽의 현대인들이여, 길을 찾아라

혜초가 거쳤을 그 수많은 길 위에서 시인은 삶의 지난함과 삶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길 가다가 문득 뒤돌아본다

길 뒤에 무엇이 있나

길 뒤에는 또 길

길 앞에는 또 다른 험난한 길?(<대륙에서 대륙으로 가다>중에서)

현대는 ‘질주의 시대’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찍 질주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초고속으로 달려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후세들은 키워지고 있으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철저하게 ‘초고속’으로 우리 후세들은 인위적으로 자라고 있다. 스스로 크고, 스스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 키워지고 인위적으로 자라고 있는 현대인들!

현대는 ‘질주의 시대’이며 그 ‘질주’를 모두들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길속으로 함께 묻어간다. 시인은 이 현대의 삶을 두고 “길 가다가 문득 뒤돌아본다”고 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아직도 먼데 과연 ‘뒤돌아볼’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가끔씩 자신의 길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볼 때 내가 거쳐 온 길을 가늠해 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알게 되는 법이다.

‘길 앞에 또 다른 험난한 길’이 있을지라도 가끔씩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혜초의 길’은 굳이 설명하지만 고행의 길이었으며 깨달음의 길이었다. 인도로 가는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만나고 수많은 나라를 거쳐 지나갔다. 혜초는 그 길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부처는 스물아홉에 집을 떠났네

집 떠나야 길이 열리고

사람 만나야 사람 만들 수 있고

길 떠나야 사람 사귈 수 있는 것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마을 이루고

집과 집이 모여 도시 이루는 것을

물과 물이 모여 강이 되듯이

별과 별이 모여 밤하늘이 되듯이(<떠나는 자, 머무는 자>중에서)

혜초의 ‘길 떠남’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별과 별이 모이는 ‘밤하늘’의 이치를 알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혜초의 길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다음 시를 읽으면 더욱 명확해 진다.

오천축국 가보고 알았겠지

부처는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깨닫고

길에서 죽었다는 것을

부처에게 길은 집이고 도량이고

병원 영안실이었다는 것을(<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다>중에서)

길에서 모든 것을 경험하고 길에서 태어남과 죽음까지 고스란히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혜초의 길이었음을 시인은 해석하고 있다.

혜초의 ‘머나먼 길’을 시인을 따라가면서 현대 문명의 이기심과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개탄도 숨기지 않는다.

집값 오르니 오년 번 돈보다 더 많은 수익

집값 떨어지니 오년 번 돈보다 더한 손실

나 이 좁은 땅에서

아파트 평수 넓히고자 안달복달인데

혜초, 그대는

그 많은 길의 주인이었구나

그대가 걸어 길을 길들였구나(<땅과 집과 길>중에서)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땅값 때문에 집을 옮기고, 땅값 때문에 집을 버리는 사람들⋯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엔 ‘땅’만 있고 사실 ‘길’은 없어진지, 혹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터이다.

혜초는 그렇게 수많은 길과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으로 맴도는 인생을 한탄한다.

나의 길이 언제까지나 앞으로 나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걷고 또 걸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링반데룽 같은 인생(<월아천에서>중에서)

링반데룽? 산속에서 짙은 안개 등으로 계속 걷지만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길을 잃어버린 것, 분명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지만 한참 만에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현대인의 삶을 시인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은 길에 대한 시인의 내면을 담았다. <혜초의 길>이란 부제를 달았지만 사실, 그 길은 우리가 갈 길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길 위에서 삶을 깨닫고, 길 위에서 인생을 노래하기 보다는 길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쏜살같이 질주한다. ‘링반데룽’같은 쳇바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승하 시인은 ‘길’을 찾으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나의 시는 비교적 수월케 씌어진다. 그것은 평소에 머릿속에 시 생각이 가득차 있어서, 펜을 들면 수월케 시가 되는 것이다.(중략) 시는 마음이다. 마음을 잘 쓰는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배경음악과 함께 읽기를...

천상병 시인이 자신의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책머리에 손수 쓴 글이다. 그의 ‘귀천(歸天)’이야 이제 ‘국민 詩’가 된 지 오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중에서>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은 크게 총 넉 장으로 이뤄져 있다. 제 1장 ‘이 세상 소풍’에서 시작해 제2장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제3장 ‘사는대로 살다가…’ 제4장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로 구성돼 있다.

‘이 세상 소풍’에서는 아내와 장모, 아이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고 정겨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아내가 찻집을 하고, 칠십 팔세의 장모님이 아직도 정정해 살림살이를 거의 모두 하다시피 하니 자신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나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행복’ 중에서>

부러울 것 없는 자신을 두고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집하나 없는 것을 두고도 그는 불평이 없다.

옛날의 예수님도

집이 없었는데

나는 셋방이라고 있으니

그저 영광이다<‘집’ 중에서>

이쯤 되면 시인의 자족(自足)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에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고 죽어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도 읽힌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소릉조’ 중에서>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고향인 시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막걸리와 시를 쓰며 살고 있지만 고향을 향한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고, 갈 마음과 달리 발걸음은 움직이지 못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고 멀리 떨어진 형과 누이를 그리워해 본다. 그러면서 시인은 “나이 사십에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간다.”라고 ‘불혹의 추석’에서 되뇌인다.

시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풀면서 자신의 지금과 그리고 훗날 자신이 죽어 땅에 묻혔을 때 찾아올 아들, 딸들에게 자신의 비명(碑銘)까지 남겨 놓는다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중략)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나의 가난은’ 중에서>

막걸리와 예쁜 아내와 정정한 장모와 행복한 날들을 보낸 시인이 죽어, 나중에 자신의 풀섶을 찾는 이들에게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생각해 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막걸리와 맥주를 좋아했던 시인은 마침내 자신의 간이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조차 시로 풀어쓴다.

보지도 못한 내 간이

괘씸하게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쪼무래기가 뭘 할까마는

아직도 살고픈 목숨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원래 쿠데타를 좋아하지 않는다<‘간의 반란’ 중에서>

‘간의 쿠데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인은 쿠데타를 싫어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3장에 ‘사는대로 살다가…’에 이르면 시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새’와 ‘비’에 대한 시들이 눈에 띈다. 시인의 비극적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도 있어 시인의 아픔을 보여준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새’ 중에서>

비나 내리는 날, 시인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려 본다.

나는 국민학교 때는

비가 오기만 하면

학교엘 가지 아니하였다

이제는 천국에 가신 어머니에게

한사코 콩을 볶아달라고 하여

몸이 아프다고 핑계했었다<‘비’ 중에서>

새와 비를 노래하던 시인의 ‘그날은-새’ 부분에 이르면 시인의 암울했던, 그리고 이해도 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의 상처를 만난다. 그 비극은 우연과 필연이 종합된 현대사의 비극!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롱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진실과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간다. 혹독한 전기고문 등을 받고 6개월 간 투옥됐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그 경험, ‘이젠 몇 년이었는가.’라며 시인은 진실과 고통의 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 4장인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에서는 길과 구름, 하늘에 대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길은 끝이 없구나

(중략)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길’ 중에서>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의 시집에는 유독 ‘애오라지’라는 부사가 많이 등장한다. 시인이 아마도 평상시 즐겨 썼던 말이지 않나 싶다. 사전적 의미로는 ‘겨우’ ‘오로지’라는 의

미로 읽히는 ‘애오라지’…

‘애오라지’ 가족을 사랑했고, 새와 비와 길을 노래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노래했던 천상병! 그의 시는 알코올 도수가 감춰져 있어서 무심코 읽는 독자들을 취하게 만든다는 해설이 마음에 다가온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