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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6 100세 할머니가 남긴 위대한 유산

어느 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빠져드는데 강한 더덕 냄새가 풍겨왔다. 콧속으로 밀려드는 향기는 강하다 못해 머리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 봤지만 향이 나는 진원지를 찾지 못했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고 나서야 그 향기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향기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흰 머리에 몸빼 바지를 입은 한 할머니가 더덕껍질을 말없이 열심히 벗기고 있었다. 하얀 속살이 나타날 때마다 그곳에서 내뿜는 향기가 지상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오늘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1912년 태어난 김화식 할머니. 세상을 떠나면서 김 할머니는 ‘위대한 유산’을 후세들에게 남겼다. 생전 모아두었던 재산을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2천500만 원을 기부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북한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남한으로 남편과 함께 내려왔다. 이후 남편과 사별한 뒤 지금까지 홀로 이 세상을 살아왔다.


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해 오던 김 할머니의 유일한 벗은 찾아오는 자원 봉사자들. 자원 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시간이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대화의 시간이었고, 정다운 삶의 모습이었다.


물론 세상은 녹녹치 않았다. 할머니에게 지급되던 정부보조금이 다른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마음씨 악한' 사람도 있었다.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할머니는 2007년 신내 요양원에 입소를 결정한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인 할머니에게 요양소 생활은 오히려 벗이 있어 다행이었을까.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찾아오는 ‘마음씨 좋은’ 자원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활해 왔다.

요양원에 입소할 당시 할머니는 그동안 정부보조금과 전세 보증금 등 3천500만 원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 슬하에 자녀가 없었던 할머니는 요양원에 입소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좋은 곳에 쓰고 싶다며 유산 기부를 약속했다.

유난히 아이를 좋아한 할머니는 2천500만원을 아픈 아이들을 위해 한 어린이 재단에 기부했고, 나머지는 당신의 장례식 등 사후 관리를 위해 신내 요양원에 기부했다. ‘위대한 유산’을 남긴 김 할머니에게 이런 시를 드리고 싶다.

고양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
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였다
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
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
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
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
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
독거, 아니었다
식탁은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다
식탁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다(조정인의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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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