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7.19 BC 1700년 <슬>의 슬픈 사랑…박민규의 글앨범 <더블>

최근 아내가 분당 구미동에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대학원생들의 미술 작품과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 자신이 손수 만든 핸드페인팅 도자기 등 조그마한 예술품을 팔고,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가벼운 차 한 잔 대접하는 그런 갤러리이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제일 좋아하는 것은 ‘턴테이블’이다. CD와 MP3, 실시간 음악 등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턴테이블’은 낯선 용어이자,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도 모르는 그런 물건이지 않을까. <아름다운가게>에서 4만원(스피커까지 포함해)에 구입한 턴테이블과 몇 십 장의 LP판. 그 모습 자체만으로 나를 흥분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승철의 LP판에서 치치직~~ 순간 순간~~ 잡음을 내며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왠지 가슴이 벅차 온다. LP판이 회전하면서 내는 소리는 ‘낭만’ ‘추억’ ‘아련함’ ‘아픔’ ‘기쁨’ ‘슬픔’ ‘절망’ 등이 소복이 묻어 있다. 모든 감정이 온 몸에 흘러 전율을 느낀다.

sideA가 끝이 나면 판을 뒤집어 sideB를 듣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판을 뒤집는 그 맛! 정말이지 직접 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리. 물론 sideA와 sideB의 모든 노래들이 나를 울리거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추억과 낭만을 던져주는 노래도 있지만 그냥 바늘을 훌쩍 들어 다음 노래로 건너뛰게 하는 노래도 분명 있다.

박민규 글앨범 <더블-side A, B>

작가가 앨범을 냈다? 글쟁이가 노래를 불러 앨범을 냈다는 말인가? 물론 글 쓰는 사람이 음악에 재능이 있을 수 있고, 앨범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 장르가 앨범이 아니라 ‘글앨범’이다

그만큼 자신만의 앨범을 갖고 싶은 욕구였으리라. 어쨌든 박민규 작가는 그 꿈을 이뤘다. 음악이 아닌 글로 만든 앨범이지만. 고스란히 sideA와 sideB의 앨범 형식을 차용했다. 각각 9곡(작품)씩. 턴테이블에 걸고 듣고 싶지만, 글로 된 앨범이라 눈으로 돌려가며 읽을 수밖에. 낭만과 아픔, 기쁨을 주는 곡(작품)도 있었지만 영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때는 나중을 기약하고 우선 좋은 곡들로 옮겨갔다.

소설은 계(界)가 있다. 상상계, 현실계, 그리고 상징계. 소설 장르는 사실 상징계에 머물러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하되 현실이지 않는, 그런 장르! 박민규 작가는 상상계에 속해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카스테라>의 대부분 소설, 기타 작품들. 그가 아마도 현실계로 발을 뻗어 보려는 장편소설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아닐까 싶다.

<더블>에 실린 18 편의 작품 역시 그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상상계에서 현실계와 상징계로 내려오면서 <아침의 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상문학상인 <아침의 문>에 작가추천작으로 <딜도가 우리가정을 지켰어요>라는 글이 실려 역시 상상계에 머물러 있는 작가를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더블>은 상상계의 무한히 뻗어 나가는 작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부터 짙게 드리워진 삶의 그늘 아래로 지쳐 스러지는 이들도 만날 수 있다. LP판에 있는 모든 노래가 ‘낭만’ ‘추억’ ‘기쁨’ ‘슬픔’을 전달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더블>도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상상계에서 현실계로 조금씩 걸음을 옮긴 그의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서 코멘트 하나, 앨범까지 내놓은 박민규 작가는 조만간 직접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는 행동까지 저지르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BC 1700년에 만난 ‘우’…나의 다리를 너에게 주마

sideB의 <슬>은 슬픈 노래다.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 <슬>에서도 눈이 온다. BC 1700년. 도대체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작가는 첫 시작부터 정확한 답을 던져준다. 주인공 우(남자)가 돌을 갈고 있다. 그렇다. 선사시대에 인간들은 돌을 갈았다. 멋 내고, 장식하기 위한 돌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사냥에 필요한 돌…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래서 두툼한 짐승의 가죽을 한 번에 뚫을 수 있는 돌!

누가 강력한 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됐다. 사냥꾼이 된다는 것은 BC 1700년에 대단한 권력이자 경쟁력이었다.

다른 모든 종족이 사냥을 위해 터전을 옮겼지만 우는 남을 수밖에 없다. 그의 여자 ‘누’가 이제 막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때는 한 겨울. 희디, 희디, 흰 눈이 오는 날. 우는 사냥을 나서게 된다. 갓 낳은 새끼들이 엄마 젖을 물지만 먹은 것이 먹는 어미젖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도, 아내인 누를 위해서도, 이제 막 태어난 새끼를 위해서라도. 그러니 우가 희디, 희디, 흰 눈을 맞으며 사냥을 나설 수밖에. 그러나 짐승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고, 또또 걷고… 짐승의 냄새를 맡으려 해 보지만 냄새가 없다. 차가운 입김만 나오고,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다, 코끼리 보다 덩치가 큰 놈을 만난다. 이 짐승도 추운 날에 지쳤는지 움직임이 더디고 우가 창을 깊게 찔러 보지만 죽기는커녕 오히려 우를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우는 죽을 수가 없다. 자신의 여자와 새끼가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짐승의 공격에 도망치다 우는 바위틈에 발이 끼이고 만다. 꼼짝없이 끼여 버렸다. 발을 빼내 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바위는 더욱 발을 짓누른다. 그렇게 밤을 보낸 우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우는 살아있다. 자신의 돌도끼-자신이 직접 갈고 다듬은 날카로운 돌-로 자신의 다리를 내리치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른다. 자신의 다리를 잘라 빠져 나오려는 계획이다. 피가 튀고 자신의 다리뼈가 보이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은 죽을 수 없다. 지금 죽으면 동굴에 있는 내 여자와 새끼들은?

마침내 발목이 절단되고 바위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 주워 담는다. 뭘? 창으로 잃어버린 다리 한쪽을 대신하며 자신의 신체 부위에서 떨어져 나간 고깃덩어리(자신의 몸의 일부)를 들고 동굴로 돌아간다. 그것이 우의 마지막 선택이었고 제목은 <슬(膝)>이다. BC 1700년의 ‘우~우~’ 짐승과 다를 바 없었던 아비를 등장시킨 <슬>이 2011년, 지금 읽어도 가슴이 저미고 아파오는 것은 왜일까.

오십대 초반에 회사에서 쫓겨나 퇴직금을 타면 자식들이 우르르 집으로 몰려와 “아버지, 우리 끼리 의논했는데 재산은 미리 나눠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하는 2011년 자식들…“요즈음 노인요양원이 얼마나 좋은데, 그곳에 가면 친구도 있고, 호텔 뺨친다니까요”라고 쫑알대는 자식들…슬하에 자식이 있다는 게 슬픔이 되고 있는 현실 때문일까.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아치>에서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

sideA에 실려 있는 <근처>와 sideB에 수록돼 있는 <낮잠> <별> <아치>는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근처>를 둘러보라. 친구가 보이는지. <근처>의 나는 직장인이다. 덜컥 말기 암에 걸렸다.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 인생을 정리할 때 인간은 자신의 추억을 찾기 마련. 나는 사직서를 내고 초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 20년 뒤에 열어보자며 학교 교정에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을 생각해 낸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이 있을까.

타임캡슐에 자신의 흔적을 묻은 옛 친구들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여자도 하나 있었다. 지금은 이혼하고, 어렵게 사는 여자친구.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은근슬쩍 접근한다. 아플 때 직접 간호까지 하고 내 집에서 자고 간다.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을 한다. 섹스를 하면서 “20년 전 타임캡슐에 나...너 좋아한다고 썼는데”라고 여자 친구는 말한다.

며칠 뒤, 여자 친구는 “이런 말하기 그런데...돈 좀 빌려줄 수 있니?” 선뜻 몇 천만 원을 빌려준다. 아니다 그냥 준 것이다. 나는 얼마 있지 않아 죽는데. 누구에게 물려줄 것도, 아무도 없다. 인생을 접기 전, 예전 타임캡슐을 꺼내보고 옛 친구도 만나고, 여자 친구와 섹스도 하고, 이 보다 더 즐거운 추억이 있을까.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만 <별>은 보일까. <별>의 이야기는 복수극이다. 나는 대리운전기사. 이전에는 조그마한 회사의 회계 담당이었다. 잘 나지는 못했지만 성실한 회계 담당 직원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본다. 세상에! 저렇게 예쁘고 화사한 여자는 평생 처음 본다. 그 여자는 회사 여사원의 친구. 당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선뜻 소개팅에 응한 그 여자. 나는 즐거운 시대로 걸어간다.

백화점의 수입코너에서, 산과 바다가 있는 싱그러운 콘도에서, 맛있는 음식이 줄을 잇는 고급 레스토랑에서…그녀와 즐기는 데이트는 상쾌하고 발랄하다. 월급이 바닥나고, 카드 한도가 차고, 돌려막기를 하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회사 공금까지 횡령하지만, 그녀와 만남은 늘 즐겁고 쾌락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내게 말한다. “오빠! 나 결혼하는데...이제 그만...그동안 즐거웠어...”

그녀는 결혼했고 나는 횡령혐의로 교도소로 간다. 출소 이후 대리운전기사가 됐다. 작가는 이런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 한 클럽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달라는 콜이 오고 나는 달려간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술이 떡이 돼 뒷자리에 꼬꾸라져 있는 년! 그년이다!

어떻게 해줄까. 차를 몰고 가면서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년아! 잘 살았니? 어떻게 해줄까. 일산 쪽으로 차를 몰다 중간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뒷자리에 널브러져 있는 그녀! 나는 그녀의 스타킹과 팬티를 벗기고... 횡령까지 하면서 돈을 바쳤지만 한 번도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마다 그녀는 “우리 집이 보수적이고 고지식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어떻게 해줄까. 이년아! 차에 시동을 걸고 강물에 처박아 줄까. 아니면 같이 동반 자살을 할까. 온갖 생각이 차오르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새벽이 오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그녀의 집 언저리에 까지 도착한다. <별>은 올려다봐야 보이는 것일까.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 왜 죽어 가는지, 인생이란 태어나 죽는 것이라는 상식적 명제가 있지만, 그런 것들과 관계없이 <더블>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다.

노인들의 요양원 이야기를 담은 <낮잠>, 한강 아치위에 올라가 자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경찰 이야기를 담은 <아치>도 그렇다.

상상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sideA를, 현실계와 상징계를 좋아하는 취미라면 sideB가 더 마음에 들 것 같다. 앨범까지 내놓은 박민규 작가가 마이크를 들고 ‘전인권’ 스타일로 노래까지 부르겠다고 하면 어쩌나? 그의 노래를 들어줘야 되나? 그건 그때가서 결정해도 될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