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나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애써 외면했다. 누구 하나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자(者)를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6학년 아이가 문제를 가지고 왔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시 의원과 같은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알맞은 것은 어느 것인가 묻는 질문. ① 정해진 임기가 없다 ② 정당에 소속돼 있다 ③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④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

그는 아이에게 되물었다. 정답이 무엇이냐고. 아이는 “교과서 정답은 ③번이지만 현실적인 정답은 ⑤번 아냐.” 그는 크게 웃었다. 아이 조차도 정치인들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내년엔 한번 바꿔봐야 하지 않겠나?”

친구들의 그런 질문에도 그는 “나는 마차를 탈 생각이네.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라고 댓구하고 만다. 한국 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동층’. 그가 그랬다. 끝까지 선거에 나온 이들을 지켜보다 선거 마지막 날, 될 성 싶은 자에게 표를 던졌다.

“밴드왜건이라고 아나? 나는 그런 마치를 탈 생각이네. 그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네.”

밴드왜건(bandwagon)은 정치판에서 우세해 보이는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는 그렇게 못을 박은 뒤 소주잔을 쭈욱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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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잃어버린 분노

600 小說 2011.07.18 09:22

대학생 시절, 그는 분노의 덩어리였다. 대리출석을 부탁해 놓고 그가 한 일이라고는 막걸리 마시는 일이었다. 대학 교정을 가로막는 철조망 밑이 그의 통로였다. 개구멍은 그의 해방구,고개 숙이고, 허리 구부리고, 두 손바닥 땅 짚고 쑤욱 몸 들이밀면 개구멍은 개구멍이 아니었다. 그 구멍은 세상을 향한 분노의 덩어리, 이글거리는 분노의 철조망. 그의 뒤를 따라 개구멍에서 친구 두 명이 푸른 피를 내뿜으며 출산된다. 경계를 넘는다. 막걸리와 파전, 할아버지와 할머니, 낯선 사람과 사람, 푸른 산을 향해 고개 숙인다. 이미 취해있는 할아버지. 그를 보고 가만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말만이 살아 숨쉬는 재료였다.
“젊은 것들이 대낮부터 술이나 처먹고......나라 꼴 잘돼 간다!”
맑은 하늘 사이로, 솔잎가지 쏟아지고, 햇살에 눈을 뜨지 못한다. 시리다 할아버지의 ‘나라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노의 무리들. 막걸리 잔 부딪치며 ‘나라꼴’ 걱정한다. 분노가 전부였고, 분노의 시대였고, 분노가 술이었으며, 분노가 안주였다. 다시 분노의 강 건너 개구멍으로 교내에 들어서면 벌건 얼굴 서로 보며 분노한다. 지는 석양이 얼굴 가득 스며든다. 수업은 이미 끝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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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양쪽

600 小說 2011.06.23 10:20

비가 온다. 지하철역은 붐빈다. 비가 철철 새는 우산이 많다. 부딪히는 어깨는 또 얼마나 자준지. 5호선 공덕역에서 6호선 공덕역을 갈아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방화역 쪽으로 5호선 맨 앞 칸에 타고 지하철이 멈추면 일단 뛴다. 경험상 5호선이 도착할 때쯤 6호선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계단을 바삐 올라간다. 한 할머니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허리는 90도로 구부려졌고, 알록달록 몸빼 바지를 입었다. 머리카락은 하얗다. 양쪽 손에 큼지막한 하얀 봉지를 들었다. 하얀 봉지에 무엇이 들었는지 할머니는 계단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다. 6호선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가 울린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할머니 곁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앞서 가던 한 남자와 여자가 할머니의 양쪽 봉지를 들어준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아이쿠! 고맙구려!"라며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6호선 플랫폼에 안전하게 올랐다. 하얀 봉지 안에는 읽다 만 무가지가 수북했다. 빈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그제야 커다란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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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2년 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 우물가 옆에 뽕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잡았다.
시골에서는 논가에 있든, 밭두렁에 있든 뽕나무를 모두 잘라 버렸다. 잘려 나가던 뽕나무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6월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오디를 따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우물가에 자리를 잡은 뽕나무는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올해는 마침내 보라색 열매를 선물로 안겼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오디를 땄다.
오디는 쨈을 만들면 좋다.
몸에 좋을 뿐더러
맛나기도 하다.
쨈으로 만들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것은 물론
한 숟가락 물에 타서 차로 마셔도 좋다.
6월은 오디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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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한 그루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는 꿈을 꿉니다.
새들이 철마다 날아오고
하늘엔 구름이 적당히 지나가 주고
때론 비가 내리고
자신이 만든 그늘 아래에서
가끔씩 땀을 식히는 사람이 있기를.

한 그루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는 현실을 봅니다.
새들은 달려와 자신을 쪼고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는 찌는 태양이 내리쬐고
때론 비도 내리지 않고
자신이 만든 그늘 아래에서
가끔씩 소매를 걷어 부치고 서로를 헐뜯는 사람을.

한 그루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는 미래를 봅니다.
새들은 달려들지 않고
구름도 없는 시커먼 하늘엔 회색빛 그림자만 드리우고
때론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자신이 만든 그늘도 사려져 버려
가끔씩 아래를 내려봐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새들이 사라지고
구름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고
비가 사라지고
나무는 말라가는 자신을 봅니다.  

나무는 말라가고
새들도 말라가고
구름도 말라가고
비도 말라가고
끝내 사람도 말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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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TAG 나무, 지구

그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 내지 못했다. 판매자들로부터 부당 광고료‧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회사는 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그러나 본부장은 싱글벙글 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과징금이 훨씬 적게 나왔다며 되레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인사 때 적극 배려하겠다는 사장의 코멘트까지 받았다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예전 직장에서 경쟁회사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났어. 서로 경쟁하는 처지였지만 또 서로 협력하기도 했지. 가격 담합이었는데, 재밌는 게 뭔지 아나? 가격 담합을 하기 전에 미리 과징금 규모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철저히 한다는 거야.”

간단한 수학 공식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간단한 수학이야. 5억 원을 벌 수 있고 과징금 규모가 1억 정도 나온다 치자, 남는 장사지? 4억이 남잖아. 이런 장사, 안 할 놈이 어디 있어?”

본부장은 조만간 성과급이 나올 거라며 그의 손을 잡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은 오픈마켓과 판매자가 만든 인위적인 ‘인기 상품’을 클릭해 물건을 고르고 이런 ‘착한 소비자’로 본부장과 그는 성과급을 손에 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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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忠犬의 시대

600 小說 2011.04.19 17:51

“민영화가 뭔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공기업을 민간 경영자에게 넘기는 것을 말합니다.”

팀장이 또박또박 답을 건넨다.

“민영화가 뭔가?”

회장이 다시 묻는다. 답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

그는 머뭇거리며 답을 찾지 못한다.

“민영화는 말이지. 사람을 줄이는 게야. 최대한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최소한 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그게 민영화라는 게지.”

회장은 그에게 문서 꾸러미를 집어 던진다. 검고 굵은 ‘직원 퇴출 프로세서’란 글씨가 선명하다. 명예퇴직을 권고했는데도 끝까지 버티는 직원들을 단계에 따라 ‘최대한 줄이라’는 회장의 지시였다.

“좋은 조건으로 나가라고 하는데도 버티면 어떻게 해야지? 감당하기 힘든 부서로 보내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매일매일 업무보고를 받게. 부족한 부분을 적극 발굴하게. 여자들이라고 예외는 없네. 철저하게 퇴출 대상 직원은 소외시키게.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떠날 걸세. 이게 민영화라는 것이네. 알겠나?”

“예!”

팀장은 큰 소리로 대답한다. 조용하던 회장실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회장이 만족한 듯 묻는다.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

“회장님의 영원한 충견입니다!”

회장실에 ‘충견! 충견! 충견!’이란 메아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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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노래 한 곡 불러봐!”

회식 자리에서 후배에게 명령하다 시피 부탁했다. 소주가 몇 잔 돌고, 얼굴에 홍조를 띈 후배는 머뭇거린다. 다행히 주변에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다. 밖에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어둠이 알맞게 익은 거리는 ‘노래 한 곡 뽑기’에 딱 좋은 날씨이다. 후배는 잠깐 주저하더니 ‘신청곡!’을 외친다.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해 주면 자신이 부르겠다고 한다. 나는 이은미‧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주문한다. 후배는 ‘어~어~’를 외치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뭐하니?”

내가 묻는다.

“서른 즈음에 가사 찾는 중인데요.”

후배는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스마트폰 터치 자판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잠시 뒤.

“선배! 찾았슴다! 이은미 버전이 좋습니까? 김광석 버전이 괜찮습니까?”

“......”

후배에게 “그 가사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회식 자리에서 ‘생음악’을 주문하는 내가 후배에게는 ‘참, 이상한 양반이네.’라는 힐난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후배가 “선배! 노래는 노래방에 가서 불러야지요.”라는 말이 되돌아오지 않는 게 천만 다행이다.

밖에는 비가 알맞은 소리로 토닥토닥 내리고 있고, 어둠은 적당히 희뿌연 색을 밝히고 있지만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서른 즈음에’는 내 귓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매트릭스(Matrix)의 회로판 중의 하나를 걷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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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미미한 양'은 하늘을 쳐다본다. 봄은 미미한 양으로 왔다. 미미한 비가 내리고, 미미한 꽃잎이 피고, 미미한 새싹이 돋았다. '미미한 양'은 오늘도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봄이 미미한 양으로 찾아오고 있지만 미미한 양의 방사능이 바다를 건너 이 봄 하늘 위에 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미미한 양’은 그것이 미미한 것이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미미한 비로, 미미한 꽃잎으로, 미미한 새싹으로 봄이 활짝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미한 양의 방사능도 어느 순간 활들짝 퍼질 지 모를 일이다. 버스에 오르는 '미미한 양'은 여전히 뉴스를 통해 "미미한 양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다.

모든 것은 미미한 양으로 시작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갑자기 펼쳐지지 않는다. 미미한 것으로 시작돼 봄이 미미하게 찾아온다. 그 미미한 것을 미미하게 생각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가 영 미미하다고 '미미한 양'은 생각한다. 그렇게 미미하게 퍼지는 양이 언젠가는 화들짝 놀라는 양으로 바뀔 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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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두 여자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한 조각 아이스크림이 툭 떨어진다. 아이스크림은 누구의 혀에도 닿지 못하고 녹아 버린다. 달콤함을 전달해 주기에는 아이스크림의 운명이 너무 짧다.

두 여자는 지금 막 <엄마의 집>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멜랑꼴리(melancholy)한 모습으로 그들은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다. <풀밭위의 식사>라도 할 참인가. 멜랑꼴리한 표정과 달리 발걸음은 가볍다. 소풍이라도 가는 것일까. 찬 발걸음으로 어디를 가는 것일까.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제56회 현대문학상을 받게 되는 두 여자, 진은영과 전경린이다. 지나온 거리만큼 그녀들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이젠 어찌할 것인가. 무거운 숙제를 떠 안은 그녀들이 앞으로 어떤 문학을 선보일지. 이 땅의 여자들의 일생이란 꼭 무엇이어야만 할까. 그녀들은 지금 어디를 가는 걸까. 소풍이라고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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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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