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황사에 삼겹살이 몸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4월23일 환경부 보도자료)

"국민에게 건강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웹진에 한 연구자가 발표한 게 올라왔다. 국민이 알면 좋겠다고 판단해 (황사와 삼겹살 관련)보도 자료를 냈다. 자료를 낸 시점이 시의적절하지 않았고 이견도 있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오판을 했다."(윤성규 환경부 장관)

 

환경부에서 '삼겹살이 황사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자료를 냈다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이 같은 사실은)이견이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이었고 오판을 했다"고 말해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지난 23일 환경부는 "황사 때 돼지고기를 먹으면 황사 먼지를 배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속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빨리 귀가해서 씻는 것이 최선"이라는 연구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언론은 이를 중요하게 보도했다. 삼겹살이 황사에 좋다고 인식하는 것은 과거에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을 마치고 술을 마실 때 삼겹살을 안주삼아 먹는 데서 생긴 사회·문화적 관습일 뿐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3일이 지난 26일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또 다시 '삼겹살 논란'에 휩싸였다. 윤 장관은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돼지 값이 급락하고 양돈농가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학문적으로 논란이 있는 내용을 발표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민주통합당 이낙연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이 의원의 질문에 윤 장관은 "(양돈 농가가)어려운 상황에서 환경부가 관련 보도 자료를 낸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발표시점이 양돈농가의 힘겨운 상황과 맞물려 미묘한 상황일 수는 있지만 관련 내용자체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스스로 환경부의 입장을 부인하는 '이율배반'에 빠져버린 것이다. 한 네티즌은 이에 대해 "삼겹살이 황사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돼지고기를 사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연구자의 과학적 사실 조차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환경부에서 '삼겹살이 황사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표했다고 해서 갑자기 삼겹살 소비량이 급감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반대로 '삼겹살이 황사에 좋다'고 과학적 사실과 관계없이 떠들고 다닌다고 해서 삼겹살 소비가 폭증하는 것도 아니다.

 

양돈농가가 지금 힘겨움에 처해 있다면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상식이다. 양돈 농가를 지원하는 현실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치권에서 "왜 이런 자료를 냈느냐"고 다그치자 곧바로 "잘못했다. 인정한다"고 말하는 환경부 장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머쓱하게 할 뿐'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정치권의 말 한마디에 쉽게 주관과 줏대를 버리다 보면 정책의 중심을 잃게 될 것"이라며 "4대강도 그렇고 환경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그동안 환경부는 개발논리에 밀리고, 정치권의 논리에 밀리는 '머쓱부'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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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세종청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동학사(東鶴寺)가 있다. 지금 벚꽃이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며칠 동안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피어나던 꽃눈이 살짝 움츠려들긴 했다. 그래도 동학사 가는 길 양쪽으로 뻗어있는 벚꽃은 장관을 이룬다. 우아하게 휘어지고, 몇 백 년을 견딘 벚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길을 걷노라면 자연이 만든 선물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를 먹은 벚나무들은 1300년에 이르는 동학사의 역사와 같이 한다. 떨어지는 꽃잎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릴 때면 눈이 나리는 것인지 자연의 섭리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동학사는 남매탑 전설로 유명한 상원조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청량사로 불렸다. 920년 고려시대의 도선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고 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렸다. 이후 절의 동쪽에 학(鶴)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해 동학사라는 설과 고려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중심인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셨다 해서 동학사라는 설명도 있다.

 

크고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고찰 중의 하나이다. 세종청사의 역사도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시작점에 서 있다. 세종청사에는 아직 몇 백 년 된 벚나무도, 나이를 먹은 소나무도 많지 않다. 전부 새로 옮겨 심은 나무들이라 올해를 잘 버텨주기만을 바라는 수준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만큼 군데군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도 많다.

 

새로운 행정부 역사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너무 서두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첫 시작을 위해서는 지금 모습뿐만 아니라 후세대들에게 어떤 의미로 청사가 자리 잡을 것인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세종청사는 '충청도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정부청사'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모든 업무와 시스템은 여전히 청와대와 서울청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장관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국무회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 등으로 서울에 출장 가는 것이 잦다. 공무원들도 서울에서 출퇴근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과천 정부청사가 자리를 잡는 데 적어도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몇 달 만에, 몇 년 안에 세종청사가 행정부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서두를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서울중심으로 펼쳐지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행정업무를 세종청사 중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오는 12월에 복지부, 문화부 등 추가로 부처가 세종청사로 내려온다. 국무회의가 세종청사에서 열리고 각종 현안 보고가 세종청사에서 자리 잡을 때 세종청사의 역사는 비로소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세종청사 역사는 동학사 벚나무가 꽃잎을 휘날리는 장관만큼 이나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몇 십 년 뒤, 혹은 몇 백 년 뒤 후세대들이 세종청사 역사를 떠올릴 때 '혼란과 우여곡절의 역사'를 대화의 중심으로 삼는 게 아니라, 세종청사의 아름다운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동학사의 봄은 찾아오고 벚꽃은 아름답게 난분분 휘날리는데 세종청사에는 아직 따뜻한 봄과 꽃향기 보다는 혼란과 걱정이 앞선다.

 

 

[아시아블로그]동학사 벚꽃…세종청사의 이른 봄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4101027127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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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것은 그렇게 때문이 아니란다

그냥 그곳에 네가 있었기에

내가 혀를 내두르며 열심히 말을 내뱉은 것은 그렇게 때문이 아니란다

다만 너가 그곳에 있었기에

내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쓰레기

그 쓰레기 속에서 우린 봄의 새싹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봄은 그냥 오는데

많은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거리로

거리로

거리로

달려가더구나

그곳엔 봄 대신 스스로 만든 봄이 있을 뿐

봄은 그렇지 않단다

봄은

그냥 물이 흐르는 곳에 있단다

물이 모이는 곳

짐승이 모이는 곳

그리고 사람이 모이는 곳

그곳에 봄은 스스로 태어나지

물의 길과

짐승의 길과

사람의 길과

우주의 길과

그 속에 피어나는 이름없는,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는 그 길

그 속에 봄은 스스로 피어나는 거지

그 봄이라야

진정한 봄이라 소리칠 수 있지 않겠니

봄은 스스로 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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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가느다란 비 흩뿌리더니

아침 곳곳에서 봄의 시작을 알린다

소나무에 맺힌 빗방울 손 대면

떨어질 듯 찰랑찰랑 불어오는 엹은 바람에

가만히 흔들리고

따뜻한 남쪽 방향으로 자리잡은

진달래 찬 바람을 피해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일찍 노란 꽃을 피워낸 개나리

아직 봄으로 나오지 못한

다른 친구들의 노란 노래 기다린다.

할미꽃은 새벽에 내린 찬 서리를 맞아

하얀 얼굴로 떠 오르는 해를 향해

웃음 머금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새들의 웃음 소리

아침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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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만들기 새로운 모델이 뜬다

 

 

협동조합은 일자리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협동조합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서울 신촌오거리에 유명 커피브랜드 점을 하나 차릴 계획이다. 총 비용은 5억원. 가장 일반적인 A모델은 5억원을 가진 자본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커피숍을 오픈하는 경우다. 사장은 개업한 뒤 10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운영한다. 사장 1명에 10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는 기업이 된다. 1명의 창업주에 비정규직 10명이 일하는 구조다.

 

협동조합 개념으로 바꾼 B모델은 10명의 청년이 각각 5000만원 씩 출자해 5억원을 만든다. 10명 모두 주인이자 직원이 된다. B모델에는 조합원이지 직원이 근무한다. 10명의 주인이자 정규직 사원이 일하는 시스템이다.

 

A모델과 B모델의 이익배분은 어떻게 될까. 예컨대 한 달에 수익 3000만원이 난다고 가정하면 A모델은 아르바이트생(60만원X10명) 비용으로 60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2400만원은 사장이  가져간다. 이른바 '독식'모델이다. 반면 B모델의 경우 3000만원을 10명이 300만원씩 균등하게 배분된다.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공동 소유, 공동 분배'의 이념이다.

 

일자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모델의 차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불황기가 되면 A모델과 B모델의 진가가 나타난다. 예컨대 매출이 떨어지고 수익이 줄어들 때 A모델은 아르바이트생을 5명으로 줄이고 더 나빠지면 모든 비정규직에 대해 구조조정에 나선다. B모델의 경우 한 달에 300만원 가져가던 것을 200만원으로 줄이는 등 사장이자 주인인 10명이 고통분담에 나선다.

 

최근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ICA(국제협동조합연맹)는 협동조합을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통해 공동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단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이미 17개의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했다. 올해만 약 500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명 이상이 출자하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계산한다면 500X5=25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셈이다. 서울시 뿐만 아니라  16개 광역시·도에 각각 500개씩 만들어진다고 가정한다면 8000개의 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진다. 즉 수학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4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셈이다. 

 

4만 명은 기존 일자리와 개념이 다르다. 협동조합 직원들은 대부분 조합원이자 직원의 역할을 동시에 가진다. 자신이 출자한 곳에서 일하는, 자신의 회사라는 주인의식이 강하다. 단지 '생계수단'으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국내에 생활협동조합으로 잘 알려져 있는 iCOOP(아이쿱)이나 한살림의 경우 현재 직원만 1000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에 올라서 있다. 이는 협동조합이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기업체로서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준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지난해 12월1일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엔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부가 이 기본법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김성오 위원은 "새누리당 조차도 지금의 구조로는 일자리 창출이 힘들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의 '요술방망이'인가. 그 답은 유보적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기 나름"이다.

 

우리는 아직 협동조합의 초보 단계다. 일자리 창출의 유효한 도구가 되기 위해선 선행돼야 할 것들이 많다. 우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 실제로 이탈리아, 덴마크, 네덜란드의 협동조합이 성장하는데 자금지원이 가장 중요했다. 실제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복합체를 발전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은 노동인민금고였다.

 

규모의 경제도 필요하다. 2012년 말 현재 유럽은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GDP(국내총생산)의 11%, 전체고용의 8%를 차지한다. 우리는 농협,수협,새마을금고,생협 등을 모두 합해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불과하다. 고용비율은 0.2%에 머물고 있다.

 

김성오 위원은 "협동조합이 우리나라 GDP의 5% 비중까지 성장한다면 일자리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대안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협동조합이 이제부터 서로 고민하고 발전적 대안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보기   

볼로냐市 400개 협동조합=생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1240904038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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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 본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6000년 전으로. 별이 쏟아진다. 불타는 장작 위로 갓 잡은 물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강물은 거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아비와 어미, 딸과 아들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들었다. 익은 물고기를 한 점씩 먹으면서 별을 존중하고, 강물을 사랑했다. 억새풀로 엮은 움막집에 짙은 어둠이 찾아오면 잠자리에 든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해가 뜨면 아비는 또 다시 강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올 것이다. 그 물고기로 아내와 자식을 먹이고, 별을 보고, 흘러가는 강물을 사랑하던 가족은 지금 사라졌다. 그러나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겨뒀다.

 

6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다다라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 그곳엔 6000년의 신석기 역사를 담고 있는 선사 유적지가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였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내 노동으로' 자급자족하던 선사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그곳이다.


암사동은 신라시대 9개의 절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구암사(九岩寺)'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은 사액서원인  '구암서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암사동'이란 지명이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그 역사가 깊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였던 1925년 을축년. 네 차례에 걸쳐 큰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암사동에 대홍수가 일어났다. 고요하던 강물은 성난 파도가 돼 온갖 것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흙들이 쓸려 나가고 파이고 집들이 떠내려갔다. 그때 휩쓸려 나간 흙더미 아래 수 천년을 인내해 온 빗살무늬토기가 가만히 모습을 드러났다. 신석기시대 주거지의 모습이 나타나던 순간이었다. 이후 1967년 대학연합발굴단이 암사동 조사를 시작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네 차례에 걸친 발굴 작업을 통해 1979년 국가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암사 선사유적지가 2013년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추진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앞서 암사 선사유적지는 올해 큰 변화가 있다. 지금은 올림픽대로가 암사동 선사유적지와 한강을 '싹둑' 잘라놓고 있다. 연결통로가 없다. 6000년 전, 이곳에 도로는 없었다. 강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서울시가 지원에 나섰다. 암사동 유적지와 한강둔치를 녹지대로 연결하는 '암사 초록길 사업'이 시작된다. 서울시 예산 30억 원이 반영됐다.

 

또 하나 그동안 예산이 없어 주춤했던 '암사역사생태공원'이 모습을 갖추게 된다. 국토해양부의 20억, 서울시 46억4000만 원 등 총 66억4000만 원이 암사역사생태공원 사업에 투입된다. 암사역사생태공원은 암사동 211-1번지에 11만133㎡(약 3만3300평) 규모로 조성된다.

 

암사 선사유적지에 도착하면 먼저 맞닥뜨리는 곳은 '시간의 길'이다. 동굴로 만들어진 이 길은 양 쪽으로 모니터가 있어 현대에서 근대, 조선, 고려, 신라, 그리고 마침내 6000년 전으로 길을 거슬러 오르는 영상을 보여준다. '시간의 길'을 벗어나면 '체험움집'을 만난다. 체험움집은 억새풀로 만들어진 7개 동으로 한 움집 당 10명 정도가 머물 수 있다. 날이 따뜻한 봄에서 가을까지 1박2일 동안 직접 이곳에 살면서 당시의 생활을 느낄 수 있다. 체험움집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선사 체험교실'이 자리 잡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 만들기 ▲어로 ▲채집 ▲수렵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총 23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는데 대부분 학교 단위의 초등학생이 많았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체험교실'이다.
   
암사동 선사 유적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시민들도 암사동에 유적지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의미와 어떤 발자취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동구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서울 암사동 유적'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한양대 배기동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암사동 유적에서 나온 첨저형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 생활예술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며 일본 '죠몬 토기', 중국 '채색 토기'와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토기 문화라고 강조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보존과 발전을 위해 강동구청은 올해 전담과도 설치했다. 그동안 팀 단위 조직이었는데 이를 확대해 선사유적과를 만든 것이다. 선사유적과의 윤희진 학예사는 "올해는 무엇보다 스쳐 지나가는 관람 수준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깊이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할 것"이라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깊은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교육이자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하는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평가받고 전 세계에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올해 유네스코 등재 추진에 맞춰 관련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하반기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6000년 전의 암사동, 이곳에서 살았던 그들은 지금보다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을까.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아 돈으로 교환할 수밖에 없는, 그것도 제대로 교환되지 않는 불평등한 지금의 현실! 6000년 전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물고기를 잡거나 열매를 따 가족이 먹고 살았다. 호수 곁에는 언제나 물고기가 있었고 산에는 땔감이 많았다. 내 노동으로 자급자족했던 그들의 모습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 축복이자 행복이다.   

 

더 많은 사진 보기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1170823538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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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바위가 너럭바위가 되고, 너럭바위가 뾰족 바위로 작아졌다. 뾰족 바위가 징검돌이 되고, 징검돌은 주먹돌로 더 작아졌다. 주먹돌은 조약돌로, 조약돌은 공깃돌로, 공깃돌은 모래가 됐다. 마침내 모래는 검고 보드라운 흙인 명개가 된다." 어마어마하게 컸던 큰 바위는 세월이 흐르면서 작아져만 간다. 이 말을 우리 인생에 들입다 맞춰보자.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소년으로 자란다. 청소년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은 나이 먹으며 성인으로 큰다. 성인을 자라 중년이 되고,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커진다.
  
이제 우리의 꿈을 이야기해 보자.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이 꿈이었고, 중학교 때는 과학자나 의사가 미래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기술자를 꿈꿨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좋은 직장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현실에 변화가 없기를 꿈꾼다. 2세가 자라면 내 꿈은 사라지고 2세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 노인이 되면 내가 꿈꿨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의 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이순원의 '고래바위'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인지, 시인지, 동화인지 장르를 구분할 수 없다.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꿈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순원은 산만큼 큰 고래바위가 바다를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렸다. 고래바위 상태로는 절대 갈 수 없다. 부서지고 작아져 물결에, 바람에 흩날려 움직이는 명개가 돼야 갈 수 있다는 것.
      
본문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고래바위가 자신을 깨닫는 부분. "한 알의 모래가 된 다음에야 알았어. 작아지지 않고는 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이순원은 작가의 말을 통해 "처음 가졌던 마음 안의 욕심들을 살아오는 길섶에 하나하나 버리고 비워가며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더 큰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우리의 꿈은 욕심 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 앞설 때 꿈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 길섶에 하나하나 욕심을 버릴 때 내 꿈과 함께 다른 사람의 꿈도 배려할 수 있다. 꿈을 찾아 떠나고 싶은 이들이여! '고래바위'의 꿈을 좇아보자. 이순원 지음/북극곰/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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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최근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로 이웃들 갈등이 심각하다. 석양이 내리쬐는 저녁에 다정히 맥주 한 잔 해야 할 이웃들이 주먹질과 싸움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아프다. 위층과 아래층의 입씨름이 드잡이로 발전하고, 드잡이를 넘어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나는 비극적 마당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

 

층간 소음문제가 생기게 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위층에서 밤마다 뛰어 다니는 개념 없는, 철없는 조무래기 때문일까. 또 이상스럽고 괴기스럽게도 새벽마다 세탁기를 돌리고 책상을 질질 끌고 다니는 구제불능의 위층 어른들 때문일까.

 

그들에게 털끝만큼의 잘못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그것은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애초부터 이 건물이 잘못 지어진 탓이다. 새 아파트에, 처음 가져보는 내 집으로 이사 온 바로 그날, 위층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는 소리. 이럴 때 위층의 비신사적 행동을 떠올리기 전에 위층의 자유를 돈으로 속박해 버린 건설 회사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자본주의 건축주의 농간에 애꿎은 두 가족만이 비극을 만나는 지점에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것이다. 돈 다 내고, 아늑한 공간에서 가족과 안락한 휴식을 맞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적은 돈을 들여 큰 이익을 내는 것이 자본주의 속성. 아파트를 대충 만들어 놓고 눈속임으로 높은 가격으로 건물을 판다. 그 상황에서 층간 소음을 차단하는, 제대로 된 자제가 들어갔을 리 없다.

 

어쩌다 우연히 같은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에 살고 있을 뿐인데, 처절하게 층간 소음을 두고 싸워야 한다.

 

이렇게 해보자. 먼저 층간 소음문제로 위층과 아래층이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다면, 먼저 아래층 사람이 위층의 초인종을 눌러보자.

 

(딩동 딩동)

아래층: “아래층 사람입니다. 잠시 우리 생맥주나 한잔 할까요?”

(뜬금없는 아래층 출연에 긴장. 하지만 생맥주라는 말에 솔깃.)

위층: “생맥주요? 좋지요.”

(아래층 부부와 위층 부부가 나란히 나란히 치킨 집으로 간다)

아래층:(호기롭게 생맥주 네 잔을 큰 소리로 시킨다. 그리곤) “위층 애들이 참 쾌활하고 운동신경도 좋은 것 같아요.”

위층:(이거 칭찬이야? 라는 의문을 갖으면서도) “아, 예. 예...”

아래층: “애들이 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너무 커요. 층간 소음 문제가 심각하단 이 말입니다. 이 아파트, 작은 돈 내고 산겁니까? 아니잖아요. 엄청 비싸게 우리 집이라고 샀는데, 건설회사가 속여 먹었단 이 말입니다.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지도 못하고 말이죠.”

위층: (뭔 수작이지?라는 반응.) “아, 예. 예....”

아래층:(더욱 큰 목소리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 말씀입니다.”

(그때 주문한 생맥주 네 잔이 나온다.)

아래층:(이어서) “위층 아이들이 무슨 죄입니까. 아이들이 뛸 정도의 진동도 흡수해 주지 못하는 이 현실이 문제지 않겠습니까. 우리 뭉칩시다. 이 아파트를 건설한 회사를 상대로 한 번 제대로 맛을 보여주자 이 말씀입니다. 어때요?”

위층: “아, 예. 예...”

아래층: “좋습니다. 그럼, 우리 뭉친 것으로 알고 건배!!”

 

두 가족이 뭉쳐 아파트를 지은 건설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전개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성석제의 위풍 당당 가족

 

강을 사이에 둔 두 가족이 있다.

 

여기 A 가족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정자와 난자의 필연적 만남으로 탄생한 가족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지로 만들어졌다가 지금은 폐허가 된 곳에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들의 만남이다.

 

이들은 버려진 ‘상업적 터전’(드라마 터전이었고 관광지로 조성됐지만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폐허의 공간)에 하나 둘씩 우연히 모여든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인생의 허무에 빠진 남자 등등.

 

이들은 이 폐허의 공간에 모여 ‘또 다른 가족’을 만든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엄마가 되고, 인생의 허무에 빠진 남자는 아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또 다른 ‘아이’로. 그렇게 우연히 결성된 가족은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고 있다.

 

여기 B 가족이 있다.

 

이 가족 역시 남녀의 결합이라는 관계로 묶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A 가족과 다르다면 B 가족에는 ‘여성’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B 가족은 ‘주먹’으로 맺어진 가족이다. 조직폭력배들이다. 이들은 주먹으로 뭉치고, 형님과 동생만 있을 뿐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와 아들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다.

 

A와 B 가족의 혈투

 

B 가족의 대장이 탄 외제차가 한적한 시골길을 가고 있다. 그때 A 가족에 포함돼 있던 성숙한 한 여자아이가 동네슈퍼에서 물건을 산 뒤 걸어가고 있다. 여자 아이 뒤를 천천히 외제차가 쫓고 있다. 여자아이는 무섭다. 차 안에서는 저 여자아이를 납치하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풀숲으로 숨어든 것이다. 이 여자아이를 찾기 위해 B 가족의 똘마니가 차에서 내려 수색한다. 마침내 찾았지만 B 가족의 똘마니는 A 가족의 덩치 큰 또 다른, 잠복해 있던 아이로부터 뒷덜미에 무시무시한 몽둥이 공격을 당해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이를 계기로 B 가족은 A 가족의 근거지를 수색하게 되고 급기야 A 가족과 B 가족의 혈투가 진행된다.

 

A 가족에게서 폭행을 당한 B 가족의 보복 폭행으로 치닫는 싸움이다. 소설 내용은 진지하지 않다. 성석제 특유의 입담으로 이게 싸움인지, 개그콘서트의 연출된 주먹질을 보고 있는지 헷갈린다. 전혀 심각하고 대립적이지 않은, 그냥 A가족과 B가족의 피터지고, 가끔씩은 지저분한 대결이 벌어진다.

 

그 사이에 강 저 편에서 포클레인과 중장비로 무장한 공사가 점점 이 쪽으로 다가온다. 그제야 A 가족과 B 가족은 이렇게 피터지게 싸워봤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픔 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강이 파헤쳐지고,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성석제의 <위풍당당>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가족 개념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이 뭉쳐 있는 가족과 주먹으로 맺어진 가족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담고 있다. 그 사이에 그들의 터전이 되고 있는 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층간 소음문제로 갈등 관계에 있는 아래층과 위층도 생물학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같은 공간에 들어서게 됐고, 위층과 아래층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층간 소음문제로 서로 아프고, 상처만 되는 싸움을 전개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 힘을 합쳐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울 것인가. 그것은 선택의 몫이다. 층간 소음문제로 다툼의 상황에 있다면 아래층이든 위층이든 먼저 성석제의 <위풍당당>을 권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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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아픈 두 사람이 홍콩에서 만났다.

 

윤대녕의 <통영-홍콩 간>을 읽다보면 최근 영화 <건축학개론>이 떠오른다. 첫 사랑은 아무 것도 없는 하얀 종이위에 두 사람의 흔적과 추억을 채워 넣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하얀 종이를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방해꾼들이 있기 마련이다.

 

<건축학개론>에서처럼 두 사람의 애틋한 첫 사랑을 방해하는-의도했든 그렇지 않든-사건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혹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감정. 그것이 첫 사랑이 던져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윤대녕의 단편 <통영-홍콩 간>은 아픈 두 사람이 홍콩에서 만났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여기에 ‘아픈 남자와 아픈 여자가 홍콩에서 만났다’로 해 버리면 이 단편은 ‘러브 스토리’로 바뀌게 된다. 더 나아가 ‘아픈 남자와 여자가 홍콩에서 만나 헤어졌다가 통영에서 다시 만난다’로 하면 이 단편은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백(白)이 홍콩으로 간 까닭은

 

백(白)은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했다. 서른다섯 살에 거래처 중견간부인 다섯 살 연상의 여자와 사귄다. 이 연상의 여자는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지나치다. 그런 그녀와 관계는 ‘주말엔 대학로에 나가 영화를 보고, 삼청동 한옥을 개조한 맥주 집에서 맥주도 마시고’라는 白의 생각과 절대 같을 수가 없다.

 

 

 

白의 이런 말에 연상의 여자는 ‘우리가 지금 대학생이야?’라는 말로 비아냥거린다. 더 이상 연애라는 감정으로 묶이기에는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면서 이 연상의 여자는 白에게 “그렇게 낭만적인 사고에 젖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라고 충고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참을 만하다. 그런데 연상 여인의 그 다음 말, “그리고 그건 강북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라는 끝말에 白은 그녀가 불행하게 보인다.

 

그렇게 헤어졌고 두 번째 만난 여인은 같은 회사 디자인 파트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여자. 광화문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광화문에서 만나 맥주도 마시고, “1년만 만나고 헤어지자”는 쿨(Cool)한 그녀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고, 그들은 재밌는 연애를 시작한다.

 

그렇게 1년이 다 돼 가던 어느 날, 그녀는 “이제 헤어지자”고 白에게 통보한다. 이어 그녀로부터 들려오는 말 “저는 이미 결혼을 해본 경험이 있어요. 지난 일 년 동안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아시겠죠?” 그녀는 얼마 뒤 역시 이혼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결혼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白이 홍콩을 찾은 까닭은 ‘그녀’들을 잊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다.

 

숙(淑)이 홍콩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제 淑의 사연을 따라가 볼 차례이다. 淑은 홍콩에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갈 수밖에 없었다. 淑은 서른다섯의 나이에 늦은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을 온 것이다. 淑은 당시 중학교에서 생물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중매로 시청에 근무하는 남자를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한다.

 

淑에게는 잊히지 않는 아픈 기억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녀는 외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무엇보다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을 때 어머니는 淑을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하고 치료를 시킨 뒤, 다음 날 백화점에서 옷을 몇 벌 사주고는 淑이 입을 다물도록 만들었다. 이런 경험으로 淑은 가까운 사람을 포함한 타인에게 그 어떠한 믿음도 갖지 못하게 됐다.

 

두 달 만에 결혼이란 선택을 했지만, 식까지 올렸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淑은 필사적으로 말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제 남편이 된 그에게 “저, 아주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결혼 취소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한다.

 

뜬금없고 황당한, 아내가 된 淑의 말에 남편은 침착하다. 남편은 “여기까지 와서 여러모로 곤란하지 않습니까? 부부는 말을 하는데 있어 극구 조심해야겠습니다. 구사일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삼사일언은 습관이 돼야지요”라며 훈계조의 말을 한다.

 

남편에게 있어 淑은 이제 아내이자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가 됐음을 암시하는 어투이다. 아니나 다를까. 홍콩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淑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마치 淑으로부터 느낀 수치심을 완전 되갚아주겠다는 각오를 다진 듯.

 

강제로 유린당한 뒤 淑은 남편에게 자신이 중학교 2학년 때 성폭행 당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그것은 고백도 아니고, 용서를 비는 것도 아닌. 남편에게 던지는 최후통첩이었다. 남편은 곧바로 떠났고, 淑은 그렇게 홍콩에 올 수밖에 없었고 이제 홀로 홍콩에 남겨지게 됐다.

 

白淑의 만남

 

‘홍콩을 찾은’ 白과 ‘홍콩을 갈 수밖에 없었던’ 淑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홍콩이 어떤 나라인가. 수많은 관광객과 발 디딜 틈 없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곳이 홍콩 아닌가. 쇼핑 중심가와 좁은 호텔 방, 그리고 배를 타고 건너는 잠시의 낭만. 전 세계 관광객들이 쇼핑을 위해 찾는 도시.

 

그런 악조건에서 이들 둘은 우연히 만난다. ‘홍콩’을 계기로.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아픔을 잊기 위해’ ‘아픔을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게 홍콩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진 白淑은 서울로 돌아와 일 년을 함께 살았다. 아이가 생겼지만 3개월 만에 유산을 하고 만다.

 

그즈음, 白에게 또 다른 운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白의 집안에는 치명적인 가족력이 있었다. 유전에 속하는 피할 수 없는 병으로 오십 대에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른 죽음을 맞이한 것. 白에게 그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

 

白은 휴직을 하고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淑의 인생을 좀먹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남은 선택은 하나 뿐. 白은 “나는 이 집에서 그만 나가야겠어. 그동안 몸이 닳도록 생각했으니 받아들여줬으면 해.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나를 못 견디겠어”라는 이별을 통보하는 것.

 

“어디로 가려구요?”라는 淑의 질문에 白은 “꽃이 가장 일찍 피는 곳으로 내려갔다가 개화지점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려고”라고 말한다. 다소 낭만적인 白의 말에 淑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 집으로 돌아오세요”라고 말한다.

 

淑은 白을 기다렸지만 白은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가지 못한 것. 淑은 학교에 사표를 내고 통영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6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白이 통영의 淑을 필연적으로 찾았고, 그곳에서 ‘통영이 홍콩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6년만의 짧은 통영에서의 만남을 가진 뒤 白은 다시 홍콩으로 떠난다. 그것도 역시 예전처럼 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까. 淑과 예전에 거닐었던 곳을 똑같은 코스로 밟은 뒤 잊혀보고자 한 것.

 

그곳에서 白은 淑에게 가끔씩 메시지와 메일을 전하지만 淑에게서는 답장이 거의 없다. 淑과 추억이 서린 곳으로, 거의 마무리할 때쯤 淑에게서 간절한 메시지가 도착한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세요. 통영에서 기다릴게요.”

 

<통영-홍콩 간>은 白과 淑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건축학개론>이 첫 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하얀 종이 위의 여백을 생각나게 한다면 <통영-홍콩 간>은 진한 국물 맛을 느끼게 하는 백숙(白熟)을 떠올리게 한다. 白熟은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하지 않고 맑은 물에 푹 삶아 익힌 것을 말한다.

 

白과 淑만이 들어간, 그들만이 맑은 물에 푹 삶아 익어가는 사랑, <통영-홍콩 간>이 풀어나가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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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지난 2011년 8월에 1쇄가 나온 이후, 2012년 3월에 4쇄가 발간되면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달팽이 안단테>. 달팽이를 관찰한 에세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달팽이 안단테>를 읽는 순간, 오봉옥 시인의 <달팽이가 사는 법>이란 시가 문득 떠올랐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달팽이'라는 문구가 공통으로 들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지난해 내가 직접 목격한 달팽이를 보면서 오봉옥의 시구를 되새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는 눈물 많은 짐승이었다. 이슬 한 방울도 누군가의 눈물인 것 같아 쉬이 핥지 못했다. 하지만 난 햇살이 떠오르면 숨어야만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어둠 속에 갇혀 홀로 세상을 그려야 하고, 때론 고개를 파묻고 깊숙이 울어야만 한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그런 천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등에 진 집이 너무도 무겁다. 음지에서, 뒤편에서 몰래몰래 움직이다보면 괜시리 서럽다는 생각이 들고, 괜시리 또 세상에 복수하고 싶어진다. 난 지금 폐허를 만들고 싶어 당신들의 풋풋한 살을 야금야금 베어 먹는다.(오봉옥 '달팽이가 사는 법')"

 

<달팽이 안단테>는 오봉옥 시인의 시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눈물 많은 짐승'은 '점액질이 많은 존재'로 설명되고, '햇살이 떠오르면 숨어야만 하는 존재'는 낮에는 잠을 자고 어두운 밤에 움직이는 달팽이의 습성을 알게 해 준다.

 

'난 지금 폐허를 만들고 싶어 당신의 풋풋한 살을 야금야금 베어 먹는다'는 시적 표현은 달팽이가 여러 개의 이빨을 이용해 다양한 먹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서른네 살에 떠난 짧은 유럽 휴가지에서 '나'(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원인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돼 미국 뉴잉글랜드로 되돌아온다. 몸은 말을 듣지 않고, 계속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모든 것이 '쓰러지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달팽이를 만나다"

 

고향에 도착해 병원을 찾았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한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사이, 내 몸은 더욱 악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방문을 했다. 친구는 근처 숲 속에서 작은 생명체를 발견한다.

 

"숲에서 달팽이를 보고 주워왔어."

 

그렇게 달팽이와 나는 동거를 시작한다. 달팽이와 함께 지낸 이튿날, '나'는 종이에 나 있는 구멍을 발견한다. 달팽이는 제비꽃 화분에서 물과 음식, 잠 잘 곳을 찾아다니며 잘 살고 있다. 제비꽃 화분에서 나와 종이를 먹어 버린 것이다.

 

'나'는 유리 어항 하나를 발견하곤 그곳으로 달팽이를 옮긴다. 그리고.

 

"이 유리 용기 안에서 달팽이는 안전했다."라고 말한다.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을 알지 못하는 질병에 걸려 있는 '나'도 뉴잉글랜드의 작음 집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나'는 달팽이를 하루 종일 관찰하면서 조금씩 달팽이의 안전에 예민하게 신경을 쓰고 있음을 느낀다.

 

누워있는 나에게 '달팽이의 출현'은 작은 공동체에 대한 탐험으로 이어진다. 달팽이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속에서 달팽이가 암수한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고, 달팽이의 이빨이 '날카롭고, 작고, 섬세한' 지식도 습득한다.

 

"나도 동개를 만들고 싶다"

 

 

달팽이는 자신의 몸을 어떻게 보호할까. 혹독하게 추운 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어니스트 잉거솔의 <달팽이 사육장에서>라는 구절을 '나'는 주의 깊게 읽는다.

 

"달팽이는 껍데기 속으로 들어간 뒤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된 얇은 막을 껍데기 입구에 친다. 모형 북 가죽처럼 팽팽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몸을 더 안쪽으로 움츠리고 또 다른 '동개'를 만든다."

 

달팽이가 만드는 동개(冬蓋-달팽이가 분비하는 껍데기를 덮는 석회화된 점액)를 보면서 '나'는 나의 상태를 생각하게 된다. 달팽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동개'를 만드는 반면 '나'는 지금 원인도 모를 병에 걸려 달팽이만도 못한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결국 나는 달팽이가 지닌 여러 가지 능력이 부러웠다. 나도 달팽이처럼 당장 동개를 만들어 나를 둘러싼 시련들을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생각한다.

 

제럴드 더렐의 자서전 <새, 짐승과 그 일가들>이라는 책을 통해 '나'는 달팽이의 짝짓기와 특별한 사랑법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다. 달팽이 사랑법은 아주 특별했다.

 

"그들은 내(더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침내 서로 뿔을 접촉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서서 서로 상대방의 눈을 오랫동안 열띤 모습으로 응시했다. 이어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 달팽이가 거의 동시에 옆구리로 미세하고 무른 흰 침처럼 보이는 것을 서로에게 찌른다…"

 

더렐이 묘사한 달팽이의 사랑법이다. 여기서 묘사된 '침'은 '사랑의 화살'이라고도 불리는데, 아주 작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탄산칼슘 성분의 침이다. '나'는 달팽이가 찌르는 '사랑의 화살'을 떠올리면서 이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깊은 사랑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1년 여 동안 달팽이를 관찰한(아니, 달팽이와 함께 살아온) 나는 마침내 한 마리의 달팽이에게서 태어난 새끼 달팽이까지 경험한다. '나'는 마침내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건강도 조금씩 회복된다. '나'는 1년 동안 달팽이와 함께 했고, 달팽이의 삶을 통해 서서히 회복되는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에는 무엇이 이 험난한 길에서 나를 구해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숲달팽이와 그 녀석이 낳은 새끼 달팽이가 문득 제 앞에 나타났고, 그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생명체를 관찰하는 것은 그것의 삶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생명이 움트는 봄이다. 온갖 생명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나가는 계절이다. 그들은 아주 느리게…느리게 자신의 생명을 키워간다. 특정 생명체의 성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은 '치유의 세계'로 초대받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다.

 

21세기 우리는 지나치게 빠른 '프레스토(presto, 아주 빠르게)'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젠 '안단테(andante, 느리게)'로 자신의 삶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생명체가 내는 놀라운 화음을 가만히 들어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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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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