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 고사포 해수욕장.

해송 속에 텐트 치고

해변가로 나갔다.

조개껍데기 파도길 따라 줄 서 있고

갈매기들의 아침식사도 바쁘다.

한 갈매기를 따라 카메라를 들이대니

놀라는 표정도,

긴장하는 얼굴도,

경계하는 자세도

아니다.

마치 "날 찍고 싶다는 거야?"라고 당당히 포즈를 취한다

가까이 갈수록 갈매기도 같은 움직임으로 멀어진다.

갑자기 확 달려갔더니

"나 잡아봐라~~"

멀리 날지 않고 정확히 내가 빠르게 움직인 달음박질만큼

날개짓을 했다가

그대로 멈춘다.

갈매기와 나의 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언제가 그 정도의 거리였다.

"나 잡아봐라~~"

고사포 해수욕장의 아침은

파도 소리속에

갈매기와 조개껍데기의 조용한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조개껍질 묶어 갈매기 목에 걸고 싶건만

불가능한 현실에 파도 소리만 힘차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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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친구를 만났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계에 몸담았었다. 훌쩍 남녘으로 농사짓겠다며 떠난 지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남녘의 어느 산에서 숲 해설가로 있다. 산림청이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산림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 왔다가 짬을 내 세종시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40대 후반에 들어선 그녀도 나이가 들었다. 10년 전 젊은 패기와 생태환경에 대한 열정으로 농촌으로 떠났던 세월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지쳐 보였다.

 

 

우리는 이른 저녁 세종시 첫마을에 있는 닭갈비집으로 향했다. 많은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종청사 정규직 공무원들의 목에는 파란색 신분증이 보이고 하루 동안 업무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닭갈비 3인분과 소주, 메밀국수를 시켰다. 아직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음식점이 많은 첫마을에 자주 온다고 하자 그녀의 눈빛이 그들에게 집중됐다. 닭갈비가 익어가기 전에 그녀와 나는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말았다.

 

"숲 해설가는 어때?"

 

내 질문에 그녀는 벌써부터 자신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지쳐 버린 것일까. 얼굴빛이 막막하다. 그녀는 "일당 4만1000원"이라고 짧게 말한 뒤 닭갈비 한 점을 집어 올리고 소주잔도 뒤따라 비웠다. 우리 잔에는 새로운 소주 한 병이 추가됐다.

 

"하루 8시간 일하고 4만1000원 받는데 문제는 일당에 있는 것만 아니야. 8시간 동안 정작 숲 해설가 역할에 걸맞는 일을 하는 시간은 두 세 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무실 정리하고, 풀 뽑고, 심부름하고, 프린터하고…이른바 잡무."

 

그녀는 시간당 5125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이다. 10개월마다 계약을 다시 한다. 정규직 공무원이 아니다 보니 각종 수당과 복지는 없다. 곁에서 닭갈비를 먹고 있는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모습에 집중하는 그녀의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2013년 수당 등 모든 소득을 합친 정규직 공무원 월평균 임금은 435만원에 이르렀다. 한 달에 23일을 일한다고 계산하면 일당 18만9000원. 하루 9시간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2만1000원이다.

 

정부는 최근 공무원 파트타임(시간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파트타임은 차별 없는 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숲 해설가로 있는 그녀가 하루 2~3시간 일하면 정규직 공무원 시급 2만1000원으로 계산 4만2000~6만3000원을 지급해야 한다. 지금의 그녀처럼 시급 5125원을 받는 파트타임을 늘린다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이다. 파트타임은 전일제 근무자와 차별이 없고 사회보장제도는 물론 각종 수당에서도 소외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차별과 소외는 물론 억압이 만연해 있다. 이것부터 뜯어 고치는 게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내일 박람회에 일찍 가야 한다며 자리를 정리한 뒤 정규직(?)인 내가 계산을 했다. 총 4만3000원이 나왔다. 계산하는 모습을 뒤에서 언뜻 지켜본 그녀가 한 마디 던진다.

 

"오늘 내 일당만큼 써버렸네."

 

어둑한 시간에다 구름마저 잔뜩 끼어 하늘은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닭갈비집을 나서는 우리들의 등 뒤로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익어가는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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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인류가 살기 전 그곳에 늪이 있었다.

삶의 터전이었던 어부들은 이날 배를 띄우지 않았다.

야생 오리들이 헤엄치고

흰 날개짓 우아하게 그리는 백로는 더 넓게 하늘을 날았다.

사람들은 찾아 오고

1만년 된 물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뜨거운 피 속으로

인간의 피 속으로

스며들면 좋았겠지만

인간의 피는

늪의 물에 닿지 못한다.

보고 보고

또 쳐다보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늪의 깊이를 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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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오늘 우리 신문 1면 기사에 싸이 관련 뉴스가 발제됐다. 스트레이트를 적으라는 데스크의 주문에 해설식으로 써 버렸다. 해설기사와 스트레이트 기사의 차이! 

 

[해설기사]

 

'싸이는 싸이다.'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가 기록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우리나라 시간으로 27일 미국 빌보드 차트 핫100에서 2위에 올랐다. 100에 오르는 것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 사항인데 당당히 ‘NO. 2’에 자리를 잡았다.

 

무서운 속도다. 위풍당당하다. ‘강남스타일은 우리나라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유럽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100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강남스타일은 승승장구했다. 유튜브 조회수 3, 아이튠즈 1위 기록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유튜브와 아이튠즈가 전 세계의 인기도를 반영하지만 공식 기록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는 다르다. 열풍이 아니라 문화가 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에서 시작된 싸이 바람은 끝나지 않았다. 열풍은 싸이 유행을 만들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행은 트렌드를 불러왔다. 열풍과 유행, 그리고 트렌드는 언제든지 대중에게 잊혀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금방이다. 오늘 열광하지만 내일 잊혀지는 게 대중문화다.

 

싸이는 다르다. 한 순간 하고 지나가는 열풍과 유행, 트렌드가 아니다. 유튜브와 아이튠즈. 전 세계적으로 집중된 시선은 분명 열풍이자 유행이자 트렌드였다. 잊혀지는 순간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빌보드 차트 ‘NO.2’가 그 순간을 문화로 만들어줬다. ‘강남스타일한국스타일로 승화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싸이는 싸이다.’

 

[표출된 기사]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싸이에 의해 새로 쓰여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7일(한국 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핫 100 2위'에 올랐다. 핫 100에 오르는 것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 사항인데 당당히 'NO. 2'에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빌보드 매거진인 빌보드 비즈에 따르면 강남스타일은 2주 전 64위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후 지난주 11위까지 급등, 이번주 정상을 목전에 두게 됐다.

빌보드 비즈는 "강남스타일이 한국 래퍼가 말춤을 추는 동영상으로 로켓처럼 11위에서 2위로 올랐고, 디지털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1위에 근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열풍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가 됐다. 싸이는 확실히 달랐다. 한 순간 '훅!'하고 지나가는 열풍과 유행, 트렌드가 아니었다. 유튜브와 아이튠즈, 전 세계적으로 집중된 시선은 분명 열풍이자 트렌드였다. 여기서 다시 한번 빌보드 2위를 기록함으로써 '강남스타일'은 '한국스타일'로 승화돼 세계적인 문화 양상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빌보드는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울러 70여 개의 차트를 매주 발표하며 이중 싱글 차트인 '핫 100'과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을 메인 차트로 꼽는다. '핫 100'은 모든 장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100곡으로 선정한다.

정종오 기자 ikokid@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09270903029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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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굿네이버스에서 보도자료를 냈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오랜 기근으로 아이들이 굶어죽어가고 있고 영양 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굶주리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든다.

 

사랑받기 위해, 귀여움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는 현실! 아프리카에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도 부익부빈익빈으로 어두운 그림자 속에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굿네이버스에서 보내온 아프리카 아이의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굵은 눈동자에 아롱새겨져 있는 아이의 눈엔 깊은 슬픔과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어떤 존재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아이가 있기에 우리가 있고, 아이의 재롱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이들 아이들에게는 작은 정성이 평생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들의 눈에 맺힌 깊은 슬픔을 거둬줄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우리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이다.

 

 

 

 

 

 

아래는 제가 쓴 기사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09060905116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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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가문의 영광이겠다

초고속승진이라는 키워드가

포털 인기검색어에 랭크됐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되뇌겠는가

가문의 영광이겠다

남의 입이 됐다는 소식이

늘 뉴스의 중심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그 이름을 불렀겠는가

가문의 영광이겠다

후배들보다는 위에 충성했고

그 충성이 언제나 한결같았으니

얼마나 많은 고위층들이 보듬어 주었겠는가

 

가문의 수치겠다

초고속승진이라는 키워가

포털 인기검색어에 랭크됐으니

지난 시절, 인기검색어에

‘욕설녀’ ‘된장녀’ ‘막말녀’ 등도 있었으니

가문의 수치겠다

남의 입이 됐다는 소식이

늘 뉴스의 중심이었으니

내 입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은 게지

가문의 수치겠다

후배들보다는 위에 충성한,

위는 몇 년이면 스쳐지나가지만

아래는 늘 그곳에 있다는 것을 망각했겠지

 

가문의 영광과

가문의 수치라는

이 짧은 단어 사이에서

주저 없이 일시적 가문의 영광을 선택한 그녀에게

이젠,

가문의 수치가 영원히 역사로 기록되고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을 터이니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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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서울시민 2명 중의 1명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중하층이라고 생각하는 발표가 16일 있었다. 또 소득과 교육 수준에 따라 차별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가 15세 이상 서울시민 4만5천6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중요한 몇개의 내용을 보면 먼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원인으로는 소득 수준(58.2%)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교육수준(50.1%), 직업(41.2%), 외모(13.2%), 나이(10.8%) 등의 순으로 차별을 받는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52.6%가 부채, 즉 빚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전년(2010년)보다 7.6% 늘어난 수치이다.

 

2011년의 조사를 보면 결과적으로 2010년보다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을 중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수치도 2008년(49%) 이후 매년 증가해 2011년 51.7%를 기록했다.

 

왜? 굳이 서울

 

네티즌들의 의견을 보면 대부분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왜 굳이 서울을 고집할까?"를 강조하고 있다. 지방에 있는 네티즌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네티즌들 역시 '왜? 서울?'이라고 되묻고 있다. 자신 스스로 서울에 버티고 있으면서. 의식은 탈(脫) 서울을 생각하지만 몸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소득수준에 따라 차별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이제 식상한 해설이 돼 버렸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주관적 관찰이다. 짧은 출근시간에 잠을 자는 모습,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두드리면서 지루한 터널에 갇혀있는 자신을 방치하는 모습...엄마 손을 잡고 학교를 가는 아이의 모습도 지쳐 보였다.

 

나도 이 사회에 지쳐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의식은 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지만 몸은 따라가지 못한다. 의식은 언제나 약자를 고려해야 된다 생각지만 몸은 내 보신을 위해 움직인다. 의식을 항상 돈으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몸은 매달 돌아오는 채무 상환으로 벌벌 떠는 지경이다.

 

이런 모습이 현재 서울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 안에서, 지하철 속에서, 버스 창밖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2명중 1명이 중하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조사결과가 아니라 현실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귀농귀촌인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나라에서 귀농귀촌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귀농부터 따져보자. 귀농은 말그대로 도시를 포기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로 간다는 의미이다. 농사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근본이었지만, 지금의 농촌현실은 '농사'가 아니라 '부동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귀농을 하려고 땅이 필요하다. 왠만한 지역에 땅을 구입하려고 하면 억대의 돈을 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미 대한민국 전체 땅이 부동산의 거친 입김으로 값이 치솟아 있기 때문이다. 산간벽지가 아니고서야 농사지을 땅을 싼값으로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땅을 산다고 해도,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다. 혼자이면 모르겠지만 가정이 있는 가장이라면 귀농은 어쩌면 '화려한 노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땅을 살 돈이 충분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작물이 팔리든 안팔리든 돈에 구애받지 않는 상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귀촌은 어떤가. 귀촌은 시골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도시에 직장을 둔 사람들을 말한다. 전원주택 생활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 나도 그 중 한명이지만.

 

이 또한 녹녹치 않다. 서울에 출근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살수는 없다. 즉 가까운 도시로 출근하기 위해서는 도시 주변의 시골을 터전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디 한번 작정하고 둘러보시라. 도시 근처의 전원주택들이 어느 정도의 가격인지. 

 

주택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도시로 출퇴근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루에 4~5시간을 들여 출퇴근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쳐 나가떨어지게 마련이다. 몸이 지치면 의식도 지친다. 귀농귀촌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답은 없다. 스스로 찾을 수밖에.

 

슈마허의 <자발적 가난>과 스코트·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돈을 억수로(?) 많이 벌어 자본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거나, 그렇지 않다면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스스로의 가난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시 의식으로는 충분히 인식되지만 몸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의식으로는 당장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비극일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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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사랑하는 딸에게…

 

요즈음 많이 힘들지? 올해부터 토요일 학교를 가지 않다 보니 수업일수를 맞추기 위해 학교에서는 월~금요일 7교시, 8교시까지 수업을 진행하니, 힘들 수밖에. 중학교 2학년에 불과한 네가 벌써 힘든 일상에 빠져드는 것을 보는 아빠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구나.

 

어제 아빠와 공부를 끝내고서 너는 “와! 이번 주 수요일은 논다!”라고 신나게 말을 했지? 이번 수요일은 너에게는 ‘노는 날’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을 거야. 힘든 일상 속에서 그 하루,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너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날이겠지.

 

하지만 ‘노는 날’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이번 주 수요일에 있단다.

 

사랑하는 딸!

 

 

 

이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 있단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누군가 잘못을 하게 되면 모든 일이 잘못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해도 작은 나의 잘못으로 그 모든 성과물이 헛된 것으로 돼 버리기도 하지.

 

언젠가 네가 말한 적이 있지?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데 쓰레기 분리수거를 맡았던 애들이 잘못해서 단체 기합을 받은 적이 있다고. 그렇단다. 세상은, 특히 공동체라는 것은 하나의 잘못으로 모든 사람이 벌을 받거나 혹은 여러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맞을 때가 많아.

 

사랑하는 딸!

 

이번 주 수요일은 그런 것을 선택하는 날이란다.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어,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는 ‘총선’이 있는 날이지. 총선은 각 지역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주민을 대리하는 대표를 뽑는 날이란다. 네가 ‘와! 노는 날’이라는 관심만큼 아빠에게는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누구를 우리의 대표로 뽑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날이지.

 

잘못 뽑았다가는 네가 단체기합을 받은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이 ‘단체 기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표를 뽑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이지.

 

매년 선거 때마다 아빠가 말을 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너무나 보수 색깔이 강해 아빠가 투표하는 사람은 언제나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빠는 아직 한 번도 투표를 안 해 본 적이 없어? 왜일까?

 

사랑하는 딸!

 

아빠는 앞으로 펼쳐질 ‘우리 딸의 공동체’가 조금씩 변화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투표를 한단다. 그래서 아빠에게는 이번 주 수요일이 ‘노는 날’이라기보다는 ‘우리 딸이 어른이 됐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공동체’가 만들어져 있기를 기대하면서 투표장으로 가는 날로 생각하고 있단다.

 

언젠가-네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지 아마도-아빠에게 “아빠! 우리 이제 무상급식한데”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너도 잊지 않았지? 그때 아빠가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기도 교육감이 투표를 통해 당선되면서 이렇게 변한 것이라고 설명해 줬잖아. 그게 국민이 투표를 통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이고,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모여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큰 힘이 된다고.

 

사랑하는 딸!

 

이번 수요일에 투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단다. 힘들어 하는 너를 볼 때마다 아빠는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꼭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왜일까?

 

딸에게 너무 부끄러운 아빠여서 그렇단다. 아직도 세상은 ‘남을 등치는 자’와 ‘재물로 권력을 사는 자’와 ‘머릿속에 든 것도 없으면서 이미지로만 정치하는 자’와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어. 이 모든 것이 아빠와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제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럼 이번에 투표를 하면 바뀔까?

 

아빠는 이번 투표만으로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단다. 작은 실천이 뭉치고, 또 뭉치면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고, 네가 나중에 너의 딸에게 이런 편지를 쓸 때쯤엔 “지금 이 세상이 만들어진 것은 우리 아빠와 같은 사람들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란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노는 날’을 반기는 사랑하는 딸에게 이번 주 수요일이 ‘노는 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

 

2012년 4월9일

따뜻한 봄 햇살이 좋은 날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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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지난 24일 토요일, 때 아닌 눈이 내렸다. 지나가는 겨울이 아쉬웠을까. 아니면 다가오는 봄을 시샘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대기의 불안정에 의한 과학적 결과물이었을까. 어쨌든 눈은 억수로 왔고, 나는 당시 일을 해야 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대체 에너지 수급!


우리 집은 겨울이면 집이 무척 따뜻하다. 그럼에도 연료비는 거의 제로!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화목 보일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화목 보일러는 나무만 있으면 된다. 전원주택에 살고 있지만 나무 구하기가 힘들다. 주로 나무를 구해오는 작업은 장인어른이 맡는 게 보통인데. 이날은 워낙 큰 나무-직접 보고는 정말 기겁을 했다-를 옮겨야 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협동심이 필요했다.


서울에 있는 동서까지 불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상상태가 최악이었다. 눈발이 굵어지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씨. 아이들은 신이 났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마당을 뛰어 다니고 눈사람 만들기 바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장모님이 고조 곤히 속삭인다.


“어휴~그럼 그렇지. 어디 자네가 일을 한다면 날씨가 도와주든가. 이런 날씨에 나무 옮길 수 없으니, 쉬게!”


정말 그랬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는 평일이면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일상이나 나무 하는데 도움을 전혀 줄 수 없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가능한데,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내가 일하려고 하는 토요일이면 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서울에서 온 동서와 나는 침대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금방 날씨가 좋아질 거예요. 날씨 좋아지면 우리 둘이 금방 옮겨올게요.”라고 기세 좋게 장모님에서 말하고 나서. 장인어른도 내심 ‘이 놈의 날씨가…’라며 두 명의 일꾼(?)을 놀리는 게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달콤한 꿈속에서 나는 나무꾼이 되었다. 산을 올라 나무를 옮기고, 한 아름되는 나무를 어깨에 메고 내려오고, 올라가고. 아! 그렇게 오전의 달콤한 잠 속에서 나무를 하느라 바빴다. 일어났을 때 점심때였다. 날씨는 급기야 눈이 그치고 햇살을 비추기 시작했다.


동서도 그때쯤 일어나 나와 눈이 마주쳤고, 이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눈 맞춤을 했다. 점심을 먹고-일꾼을 써먹기 위해서인지 장모님은 고기반찬을 내놓으셨다-부리나케 4륜 차를 끌고 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헉!


그동안 장인어른이 나무가 있는 곳에서 전기톱으로 토막토막 내놓았는데, 토막 난 그 굵기가 1M는 족히 넘어 보였다. 토막을 내 놓았지만 동서와 내가 둘이서 들기에도 무거웠다. 그것도 나무 중에 가장 무겁다는 밤나무! 참나무 다음으로 무거운 나무이다.


그렇게 4륜 차로 몇 번을 옮겼다. 눈이 온 다음이고, 다니는 길이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길은 미끄러웠다. 점식을 먹고 난 12시부터 4시까지 다섯 차례를 오고 간 것 같다. 둘이서 낑낑 거리며 옮긴다고 했지만 모두를 옮기지 못했다. 허리는 아파오고, 옷은 진흙으로 온통 물들었다. 그렇게 힘들어질 때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오전보다 더 굵은 눈보라가 몰아쳤다.


동서와 나는 갑자기 변하는 날씨를 보며 “이놈의 날씨가 참, 희한하네.”라며 장인어른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는? 장인어른이 먼저 가자고 하기 전에 장모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얼른 와요! 그만하고. 이런 날씨에 사고 나요!”


우리는 그 소리를 고스란히 곁에서 들었다. 동서의 씨~익 웃는 모습에 ‘대체 에너지’ 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그렇게 4시간을 일한 우리 집에는 굵디굵은 밤나무가 한 가득 쌓였다. 1년 정도 바싹 말려서 도끼로 쪼개면 다음해 겨울에 화목 보일러의 좋은 연료가 될 것이다.


마지막 나무를 실은 뒤 장인어른과 동서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비포장도로를 운행하면서 나는 한마디 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네...”


그때 갑자기 이런 시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오늘도...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윤동주의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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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오늘 모든 언론들의 포커스는 ‘김용민’에게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꼼수>로 시작된 핫이슈와 굵직굵직한 ‘숨겨진 진실 폭로 정국’이 기사의 중심에 있고, 그 주인공이 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소를 키우는’ <나꼼수>에서 벗어나 더 큰 무대에서 농장의 혁신을 이루겠다고 나섰으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언론의 주된 기사 흐름은 ‘Why(왜), How(어떻게)’라는 분석기사와 해설 기사보다는 ‘Where(어디), Who(누가)’에 주목되는 가십성 기사로 날아갈 수밖에 없다.

<나꼼수> 진행자 중 한 명인 김용민 교수가 정봉주 전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갑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민주통합당의 ‘전략 공천’으로. 김용민 교수는 어제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찰 청사를 나서며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어떤 싸움이라도 하겠다. 그리고 이기겠다.”

정치권은 총선에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 되기 때문에 중앙당으로서는 ‘이길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하는 게 맞다. 경선을 통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하든, 전략 공천을 하든 그것은 당의 전략, ‘승리하는 싸움’이 주된 판단의 기준이다. 김용민 교수의 ‘전략 공천’도 이러한 판단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제 포커스를 ‘김용민’에 두지 말고 ‘그 주변’에 둔다면 어떻게 될까.

선거는 한 개인의 명성과 인물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월11일이 총선이니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민주통합당은 ‘김용민=승리, 당선’이라는 샴페인을 터트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노원갑의 유권자들로서는 첫 번째로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노원갑의 유권자들을 희롱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김용민 출마’를 두고 노원갑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노원갑의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의 ‘전략 공천’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판단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표출될 지는 4월11일 투표함을 열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두 번째, 민주통합당이 ‘김용민=당선’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두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김용민 혼자’ 선거를 치르는 것은 아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보좌진은 물론 자원 봉사자, 그리고 여러 가지 이벤트와 연설, 공약 등 ‘준비가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용민 교수의 출마’를 두고 “갑작스럽게 출마를 선언하면서 노원갑에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것이고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민주통합당에서는 ‘김용민’이 당선의 보증수표처럼 보이겠지만 그 아래에서 선거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보좌진들에게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 말 속에는 지역 공약은 물론 유권자 대상 선거운동 방법과 전략, 선거운동의 방향성 등 구체적 실무 작업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꼼수>의 역할, <나꼼수>의 방향, <나꼼수>의 지금이 아름다운데 ‘김용민’의 출마가 이런 ‘역할과 방향, 지금’을 어떤 식으로든 훼손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에게는 있다.

우스갯소리로 “다들 정치한다고 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소를 키우는’ 김용민과 ‘농장을 떠난’ 김용민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다름을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 설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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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