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중학생 아이가 편지를 보내왔다
때는 이른 봄,
"이젠 씨를 뿌릴 때이다."
딱 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던 그 편지
할아버지는 씨를 뿌렸다
아이의 편지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나
때가 되면 씨를 뿌려야 하기 때문
할아버지는
씨를 뿌리고
땅을 일구고
싹이 나왔다
아이의 편지는 그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씨를 뿌리는 그 순간,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때문
할아버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머리속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닌
가슴으로 알고 있었다
때는 이른 봄,
꽃을 가꾸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이의 편지를 닮았다
꽃을 가꾸는 할아버지(2012년)
목판에 유화
17cmX13cm
Painted 이문희